싸구려 커피면 어때…‘헐레벌떡 인생’에 4,5분의 여유
전 세계 무역량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석유다. 석유에 이어 세계에서 물동량이 가장 많은 품목은 바로 ‘검은 음료’ 커피다. 하루에만 전 세계에서 팔리는 커피가 25억 잔에 달하다 보니 실크로드 못지않게 ‘커피로드(Coffe road)’의 길고 긴 여정은 인간의 희로애락(喜怒哀樂)과 함께했다.
한국도 그 커피로드에 속해있다. 1년에 평균 300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한국인에게 커피는 빠듯해진 지갑 사정에도 줄일 수 없는 필수재가 됐다. ‘커피 한 잔 하실래요’라는 상투적인 문구처럼 한국에서 커피는 사람과 사람을 잇는 관계수단이다.
최근 스타벅스, 커피빈, 엔제리너스 등 커피 전문점뿐 아니라 특급호텔, 패스트푸드점, 편의점까지 ‘돈 되는’ 커피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경제 불황 속 국내 커피시장에서도 양극화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과연 수많은 커피 가운데 나를 닮은 커피는 어디에 있을까. 특급호텔 라운지에서 마시는 값비싼 커피일까, 패스트푸드점의 2000원짜리 커피일까. 나를 닮은 커피를 찾아 국내에서 가장 비싼 커피와 가장 싼 커피를 직접 음미해봤다.
○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 루왁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싼 커피는? 누구는 ‘블루마운틴이 가장 비싸다’고 이야기하고 다른 이는 ‘유일하게 미국 하와이에서 재배되는 코나가 더 비싸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인도네시아에 살고 있는 야생고양이의 배설물이다. 지구를 통틀어 1년에 500kg밖에 생산되지 않는다는 루왁(Luwak) 커피. 이 커피 원두 1kg 가격은 90만∼100만 원을 호가한다.
루왁은 인도네시아 자바섬에 사는 야생 사향고양이. 이 고양이는 천연 알코올이 포함된 야자 수액과 커피 열매가 주식이다. 겉껍질과 내용물은 잘 소화하지만 딱딱한 씨는 그냥 ‘통과’다. 고양이가 커피 열매를 소화시키면서 아미노산의 쓴맛이 첨가돼 루왁 커피만의 독특한 향과 맛이 만들어진다.
사향고양이의 배설물을 커피 재료로 이용한 것은 간편함 때문이다. 커피 열매의 껍질을 일일이 손으로 벗겨야 하는 번거로움을 ‘고양이 똥’은 단번에 해결해줬다.
국내에서도 몇몇 커피 전문가들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알음알음 소개됐다는 루왁 커피를 서울신라호텔이 호텔업계 처음으로 들여왔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갔다.
5일 찾은 서울 중구 장충동 서울신라호텔 더 라이브러리 라운지&바. 이 호텔 설인성 바리스타가 조심스레 르왁 커피 원두가 담긴 봉지를 꺼냈다. 다른 커피 원두처럼 로스팅(원두를 볶는 것)을 하지 않아 원두는 갈색 대신 녹색이 감돌았다.
핸드드립으로 뽑아낸 르왁 커피를 한 모금 입에 머금자 커피의 씁쓸함 대신 나무의 향과 약간 스파이시한 맛이 입 안을 감돌았다. 목 뒤로 넘겼을 때 깔끔한 뒷맛은 커피라기보다는 차에 가까웠다. 설인성 바리스타는 “사향고향이가 원두를 먹어 소화시키면서 떫은 맛을 없앴기 때문”이라며 “에스프레소에 길들여진 한국인들에게는 ‘맹 맛’ 같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호텔에서 파는 르왁 커피 한 잔 가격은 2만5000원. 3월 한 달간 직접 추출해 먹을 수 있는 커피 한 잔분의 원두를 추가로 준다고 하니 한 번쯤 지갑을 열어보는 것도 괜찮을 듯하다.
○ 불황 속 커피 가격 거품이 빠진다
요즘 같은 불황 속 식사 한 끼와 맞먹는 커피 값이 부담스러운 것은 사실. 얄팍해진 지갑 사정을 알아챘는지 커피의 가격 거품도 빠지고 있는 추세다.
패스트푸드점에서 햄버거와 콜라 대신 커피를 마시는 사람이 많다. 한 잔에 1000∼2000원인 커피 가격 때문이다. 서민경제학의 화폐단위인 1000원 지폐의 심리적 마지노선을 노린 가격정책이다.
원두 1㎏에 100만원 ‘루왁’ 맛볼까
‘손맛’ 담긴 인스턴트 커피 만들까
우선 맥도날드가 올 들어 선보인 ‘맥카페’가 전년 대비 60% 넘는 매출 신장률을 보이며 저가 커피 시장 확대를 주도하고 있다. 이랜드도 1000원짜리 테이크아웃 커피전문점 ‘더 카페’ 매장을 올해 안으로 현재 75곳에서 250곳으로 확대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던킨도너츠 역시 오리지널 커피 가격을 1900원으로 내린 상태다.
국내에서 커피전문점 시대를 연 스타벅스도 최근 본거지인 미국 경제 불황에 못 이겨 한 잔에 1달러 수준인 저가 인스턴트커피 ‘비아’를 선보이기도 했다.
국내 첫 ‘컵커피’인 ‘카페라떼’를 만들었던 매일유업은 커피 젤리를 넣은 ‘카페라떼 에스프레소&젤’을 최근 내놓았다. 이 가운데 기자가 맥카페 아메리카노(이탈리아산 라바차 원두 사용)를 직접 마셔봤다. 맥도날드 커피는 1년 전 스타벅스, 커피빈, 롯데리아와 함께 3명의 독자가 본보 지면을 통해 비교체험을 해봤을 때 3명 모두에게 가장 낮은 점수를 받았다.
다시 맛 본 맥카페는 예전보다 맛이 훨씬 부드러워진 느낌이었다. 원두 자체의 로스팅이 약하게 된 것인지 쓴맛과 신맛의 조화가 좋았다. 그 대신 그윽한 커피 향 대신 매장 안 햄버거 냄새 때문에 테이크아웃이 제격일 듯하다.
○ 인스턴트커피를 ‘손맛’ 담긴 나만의 커피로
“싸구려 커피를 마신다. 미지근해 적잖이 속이 쓰려온다. 눅눅한 비닐장판에 발바닥이 쩍 달라붙었다 떨어진다.”
‘장기하와 얼굴들’의 ‘싸구려커피’ 한 소절처럼 커피믹스는 고도성장을 겪은 한국 사회와 닮아 있다. 국내 커피 시장에서 80%를 차지하는 인스턴트커피에서도 커피믹스는 3분의 2에 이르는 시장을 갖고 있다. 대형마트에서 쌀과 함께 가장 많이 팔리는 품목이 우유도, 술도 아닌 바로 커피믹스다.
커피가 국내에 소개된 지 100년이 넘어가지만 커피가 한국인에게 안정된 미학을 보여주는 음료는 아니었다. 커피믹스처럼 헐레벌떡 살아야 했던 우리에게 잠시 허락된 2, 3분간의 여유였다.
수십 년간 매일 똑같았던 커피믹스에도 오늘만큼은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커피 고수들은 같은 커피믹스라도 ‘나를 닮은 커피’를 만드는 노하우가 있다.
커피 맛을 좌우하는 것은 역시 물. 미리 받아놓은 물이나 보온병에 보관한 물은 커피 맛을 떨어뜨린다. 미네랄워터처럼 마그네슘이나 칼슘이 많은 물도 카페인의 맛을 추출하는 데 좋지 않다. 생수를 사용하는 것이 최고!
팔팔 끓기 시작한 물(100도)에 바로 커피를 타지 말고 93∼95도 정도로 식힌 다음 커피를 넣는다. 너무 뜨거운 물은 커피 속 카페인을 변질시켜 쓴맛이 강해진다.
인스턴트커피를 마실 때 크림 대신 우유만 넣어도 커피 맛은 한결 담백하고 깔끔해진다. 크림이 들어있지 않은 블랙믹스를 구입해 커피를 진하게 타고 우유를 커피 양의 2배 정도 부으면 인스턴트 카페라테가 된다.
커피믹스 1개에 적당한 물의 양은 90mL이다. 종이컵 용량이 195mL이므로 주둥이로 올라올수록 점점 넓어지는 것을 감안할 때 커피믹스 1봉지에 종이컵 딱 절반 정도 물을 채우는 것이 적당하다.
시나몬(계피) 향은 커피 향을 더욱 깊고 부드럽게 느끼도록 도와준다. 커피가 뜨거울 때 스푼 대신 시나몬 스틱을 사용하면 향이 부족한 인스턴트커피도 고급 커피처럼 향이 깊게 느껴진다. 시나몬 스틱은 백화점 식품코너 등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다.
글=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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