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드라마 ‘고려 신드롬’… 그 시절 일상은 어땠을까

  • 입력 2009년 3월 16일 02시 52분


커피 마시듯 茶 즐겨

혼성 음주가무도 흔해

《‘풍로에선 물 끓고 처마에선 새 지저귀는데/늙은 아내는 세수하고 음식 간을 맞추네/해는 세 발이나 솟았는데 명주이불 다습게 덮은 채/방 한구석 내 세상에 아침잠이 달콤하네.’

고려 후기 문신 목은 이색이 남긴 시 가운데 한 구절이다.

아내는 벌써 일어나 아침 준비에 한창인데 여전히 잠에 빠져

있는 자신을 묘사했다.

당대 손꼽히던 학자의 일상도 여느 남정네와 다를 바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고려사’를 보면 ‘승니(僧尼)에게는 차(茶)와 향을 각기 차등 있게 내려 주었다’(태조 14년), ‘선두 이하에게 차와 포를 내리되 차등 있게 했다’(현종 9년) 등의 기록이 있다. 차는 왕의 하사품에 포함될 정도로 고려 사람들에게 귀중한 품목이었다.

시로 기록한 선비의 하루, 왕실에서 민간에 이르기까지 만연한 차 문화 등 고려 사람들의 일상을 살핀 논문들을 엮은 ‘고려 시대의 일상문화’(이화여대출판부)가 최근 출간됐다.

김영미 이화여대 교수(사학과)는 “고려시대를 다룬 사극들이 방영되면서 고려시대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아졌는데 고려의 사료가 매우 적은 편이어서 고려 사람들의 일상은 그동안 자세히 밝혀지지 않았다”고 출간 이유를 밝혔다.

김보경 이화여대 강사는 ‘목은(牧隱) 이색의 버들골살이와 시’에서 이색이 50대 초중반에 지은 시를 통해 선비의 일상을 소개했다. 이색은 유항이라는 곳에서 다섯 살 아래인 한수라는 문인과 가깝게 지내며 편지를 주고받듯 시를 주고받았다. 또 사흘이 멀다 하고 만나 연꽃을 함께 구경하러 다니는 등 풍류를 즐겼다.

재물에 관심을 두지 않은 선비의 고생담도 시에 잘 드러난다. 장마를 소재로 한 ‘해마다 겪는 일(每歲)’이라는 시에서 이색은 ‘해마다 비가 새서 침상들이 젖는데/징그러운 장맛비 도무지 걷히질 않네’라고 썼다.

고려시대 청자를 연구한 장남원 박사가 쓴 ‘고려시대 차 문화와 청자’를 보면 고려 사람들의 차 소비가 현대인의 커피 소비에 못지않았음을 알 수 있다.

장 박사에 따르면 고려 왕들의 행차에는 차를 끓이기 위해 화로와 차를 각각 나눠 메는 군사가 동행했다. 인종 때 문인 임춘은 ‘찻집에서 낮잠 자다(茶店晝睡)’라는 시를 썼는데 이를 통해 찻집이 문인들의 휴식 공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발달한 차 문화는 청자 제작에도 영향을 미쳤다는 게 장 박사의 분석. 그는 “경기 지역 청자 요지를 조사한 결과 전체 자기 생산량의 50% 이상이 다완(茶碗·찻잔)이었음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이현숙 연세대 강사는 ‘고려 일상생활 속의 질병과 치료’에서 고려 사람들을 괴롭혔던 질병과 이에 대한 치료법을 소개했다.

가장 흔했던 질환은 안과, 피부과, 치과 질환이었다. ‘동국이상국집’을 쓴 이규보는 눈이 침침해져 진단받은 뒤 ‘눈동자에 막이 끼어 잘 보이지 않게 됐다’고 시에 썼다. 이 강사는 “백내장일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피부 질환도 만연했다. 종기의 종류를 등에 나는 발배(發背), 환부의 껍질이 엷은 옹(癰), 뿌리가 두꺼운 저(疽) 등으로 구분할 정도였다.

치통의 치료법에 대해 ‘향약구급방’에는 “이가 흔들리거나 벌레가 먹은 것 등의 증상에는 쥐엄나무 열매 두 알과 구운 소금 반냥을 갈아서 밤마다 이를 닦아 주라”고 적혀있다.

고려시대 여성사를 연구한 권순형 박사는 ‘고려시대 여성의 여가 생활과 명절 풍속’에서 자유롭게 학문을 하고 여가를 즐겼던 고려 여성들의 일상을 소개했다.

그는 “고려 여성들은 불경을 즐겨 읽었는데 통일신라까지의 여성들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라고 말했다. 또 ‘고려도경(高麗圖經)’을 보면 고려 여성들의 자수(刺繡) 수준이 높았고, 취미로 악기를 다루는 여성도 많았다.

그는 “꽃놀이와 단풍놀이를 즐길 정도로 여성들의 외출과 놀이는 일상적이었으며 남녀가 섞여 음주가무를 하는 사례도 많았다”고 소개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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