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기자의 무비홀릭]배우 권상우가 사는 법

  • 입력 2009년 3월 17일 02시 57분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한 장면. 권상우는 암으로 죽어가는 자신을 대신해 사랑하는 여인(이보영·오른쪽)을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직접 찾아나서는 순애보의 주인공 ‘케이’ 역을 맡았다. 사진 제공 코어콘텐츠미디어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의 한 장면. 권상우는 암으로 죽어가는 자신을 대신해 사랑하는 여인(이보영·오른쪽)을 행복하게 해줄 남자를 직접 찾아나서는 순애보의 주인공 ‘케이’ 역을 맡았다. 사진 제공 코어콘텐츠미디어
《‘화이트 데이’이던 14일 밤, 권상우 주연의 영화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를 보았다. 말기 암 선고를 받은 남자(권상우)가 사랑하는 여인(이보영)의 여생을 행복하게 해 줄, 건강하고 능력 있는 남자(이범수)를 찾아 나선다는 것이 줄거리였다. 이런 비현실적인 얘기(웬만한 남자 같으면 ‘내가 죽어도 절대로 딴 남자와 만나지 않겠다는 각서를 당장 쓰고 지장 찍으라’고 으름장을 놓을 것이다)가 이상하게도 설득력 있게 다가온 건 권상우 때문이었다. 정말이지, 살짝 옆을 응시하면서 한 줄기 눈물을 주르륵 흘리는 권상우의 표정은 대한민국 최강이라 할 만큼 집중력과 흡인력이 있는 것이다.》

입만 열면 사고친다?

설화 뒤 오해와 진실

그런데 요즘 이게 웬일인가? 어느새 권상우는 ‘입만 열면 사고치는 스타’로 인식되면서 안티 팬마저 생겨나고 있다. 최근 미스코리아 출신 배우 손태영과 결혼한 뒤 등을 돌리는 여성 팬도 적지 않다. 권상우에게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권상우를 이해하기 위해선 그의 마음과 인생 속에 숨어있는 세 개의 키워드를 읽어내야 한다. 첫 키워드는 성공이고, 두 번째 키워드는 가정이며, 세 번째 키워드는 유토피아와 영원이다. 그리고 이 세 개의 키워드는 인과 관계로 얽혀있다. ‘성공을 해서→사랑하는 여성을 만나→화목한 가정을 이루고→유토피아에서 영원히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지나친 추측이라고? 아니다. 필자가 권상우를 직접 만났던 경험과 언론 인터뷰를 살펴보면 이런 사실이 드러난다. 그는 태어난 지 7개월 만에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 밑에서 형과 함께 자랐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자신만의 ‘화목하고 지속가능한 가정’을 꾸미는 게 꿈이었다. 그는 인터뷰에서 종종 “어른이 돼 한 가정의 가장이 되는 걸 많이 상상했고 이상적인 가정을 꾸리는 게 소원이었다”고 밝혔는데, 대학에서 미술교육학과를 나와 미술교사가 되겠다는 인생 플랜을 잡았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권상우의 이런 내면을 알고 있으면, 최근 그를 둘러싼 설화(舌禍)를 이해할 수 있다. TV 토크쇼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그는 아내 손태영의 혼전임신에 대해 “손태영 씨와 결혼을 했고 2세를 바랐다. 손태영 씨는 아니었는지 몰라도 나는 (당시 2세를) 계획했다”고 말해 구설에 올랐다. 많은 이들은 이 말을 “주도면밀하게 임신시켰다”는 의미로 잘못 받아들였다. 하지만 권상우의 진심은 ‘아이가 생기는 걸 피하려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아빠가 되고 가장이 되어 가족을 지켜주면서 사는 게 평생의 소망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일찍부터 외국에서 살고 싶었다. 하늘은 파랗고 바다도 파랗고 천연 잔디에서 축구를 하고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낚시를 하는 삶을 꿈꿨다. 그런 꿈을 이루기 위해서 난 지금 열심히 일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면서 또다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하지만 알고 보면, 이건 권상우의 내심을 정확히 표현한 말이다. 그는 “배우는 평생의 꿈이 아니다”고 밝혀왔다. 언젠간 은퇴한다는 얘기고, 성공을 통해 모은 재산으로 대중이 알아보지 못할 장소에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살겠다는 의중이 녹아있는 말인 것이다. 그래서 권상우에게 ‘성공’과 ‘돈’이란 ‘가정’과 ‘사랑’이란 단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다만 그는 어려서부터 동경해오던 마음속 유토피아를 “이 땅은 아니다”라는 식으로 표현했을 것이고, 이 내용이 와전되었을 것이다(권상우가 손태영과 교제하기 전에 호주에 고가의 빌라를 구입해놓은 것도 이런 의중으로 봐야 한다).

사실 ‘무릎팍도사’에 나온 권상우를 보면서 ‘저렇게까지 해야 할까’란 생각을 했다. 이 프로그램에서 권상우는 스타로선 치명적인 2개의 행동을 저질렀다. 하나는 “매년 7개 정도 되던 CF가 요즘엔 끊겼다”고 말한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내 특기”라고 하면서 물구나무서기를 한 것이다. 이 두 가지는 스타의 생명이나 다름없는 ‘환상(fantasy)’을 깨버리는 자충수였다. 오, ‘이 세상 사람’처럼 보여선 아니 될, 기가 막히게 잘생긴 스타가 ‘요즘 돈벌이가 안 된다’고 스스로 밝히고는 두 손으로 걸어 다니다니!

하지만 이를 뒤집어 생각해 보면, 그만큼 권상우는 절실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대중 앞에 선 것이다. 바로 아내인 손태영을 변호하기 위해서…. 결혼이 임신 때문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꿈꿔온 ‘진정한 사랑’의 일환이었으며, 손태영도 한 남자가 인생을 바칠 만큼 소중한 존재라는 주장을 하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권상우에게 “제발 입단속 좀 하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오히려 속사포처럼 내뱉는 그의 어투가 마음에 든다. 이렇게 말하는 스타는 별로 없으니까. 그리고 스타의 구설수는 대중에겐 즐거움이니까. 다만 한번 뱉은 말을 설령 대중이 왜곡해 해석할지라도 ‘쫀쫀하게’ 해명하지 말았으면 한다.

당신이 누군가? 권상우다. CF가 안 들어와도, 영화가 흥행에 참패해도, 진심이 곡해될지라도, 그냥 놓아두라. 그리고 욕을 먹어라. 그게 스타다.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 동아닷컴 박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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