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리 가 본 국립발레단 ‘신데렐라’
김지영 씨의 발과 김주원 씨의 손이 매혹의 앙상블을 이뤄냈다.
국립발레단의 ‘양김(兩金)’으로 불리던 두 사람이 9년 만에 한무대에 오르는 ‘신데렐라’가 개막 하루 전인 19일 베일 너머의 전모를 언론에 미리 공개했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이날 공연은 ‘하체는 지영, 상체는 주원’이라는 평가를 확인할 수 있는 무대였다.
네오클래식 발레의 선두주자인 장 크리스토프 마요가 안무한 이 작품은 3막 10장으로 신데렐라를 소재로 한 다양한 작품 중에서도 독창적이라는 평을 듣는다. 신데렐라와 왕자뿐 아니라 신데렐라의 생모와 아버지의 사랑에도 초점을 맞췄고 ‘유리구두’를 금빛 가루를 뿌린 맨발로 대신하는 발상의 전환이 돋보인다.
‘맨발의 신데렐라’ 김지영 씨는 토슈즈를 벗은 맨발로 다양한 회전과 점프를 소화했다. 탄탄한 하체에서 뻗어 나온 발레리나의 헐벗은 맨발은 금빛가루만 묻힌 채 ‘유리구두’의 장식성을 떨쳐내고 야생의 아름다움을 선보였다. 공연 기간에 오페라극장 1층 로비에는 사진작가 김용호 씨가 연습과 공연 장면을 카메라에 담은 기념사진전도 함께 열린다. 그 사진들 속에서 클로즈업된 지영 씨의 발은 혹독한 훈련을 반영하듯 앙상하고 상처투성이다. 그러나 공연 속에서 그 발은 신성함마저 자아낸다.
그에게 발이 있다면 김주원 씨에겐 손이 있다. 신데렐라의 죽은 생모이자 ‘재투성이 소녀’를 왕자가 반할 여성으로 변신시키는 요정 역할을 맡은 그는 마법을 펼칠 때마다 유혹의 손동작을 펼쳤다. 심지어 무대 뒤에서 손과 팔만 등장시킨 채 요염함을 뽐냈다. 그는 딸이 왕자와 결혼하도록 하는 막후 조종자로 마치 꼭두각시를 조종하는 듯한 유연한 상체의 움직임을 춤으로 표현했다.
이 공연의 백미는 2막에서 신데렐라와 왕자(이충훈)가 춤을 출 때 신데렐라 생모와 생부(장운규)가 같은 춤을 추는 장면이다. 두 프리마 발레리나는 2000년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9년 만에 한무대에서 공연했다. ‘로미오…’는 같은 마요의 안무로 김지영 씨가 줄리엣, 김주원 씨가 엄마인 캐플렛 부인 역을 맡았다.
‘신데렐라’에서는 김지영 씨의 춤이 본(本)의 느낌이 강하다면 주원 씨의 춤에선 교(巧)의 감각이 진했다. 아쉬움이 있다면 지영 씨에게선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애처로움이, 주원 씨에게선 애틋한 모성애가 부족했다는 것이다.
환상적 무대와 조명은 놓쳐선 안 될 볼거리다. 무용수들은 살바도르 달리의 그림 속 종이처럼 굽이치고 휘어진 흰색의 유리섬유보강플라스틱(FRP) 무대세트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등장하며 춤을 춘다. 이로 인해 암전이나 막을 내릴 필요 없이 강물 위로 한 장 한 장 띄워 보내는 편지지를 읽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극의 흐름을 창조한다. 흰색 FRP세트에 맞춰 바닥까지 하얗기 때문에 2층 객석에서 관람하면 그 위에 비치는 다양한 영상과 신비한 조명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마지막 장면도 인상적이다. 신데렐라는 눈부신 황금빛 드레스를 입고 왕자와 결혼한다. 그 곁에서 신데렐라 아버지는 요정으로 변신했던 아내를 다시 떠나보낸 슬픔에 젖어 있다. 그 모습이 왜 가슴에 사무치는 것일까. “그리고 두 사람은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았답니다”로 끝나는 동화 속 사랑의 미래가 곧 신데렐라 부모의 슬픈 사랑임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22일까지. 5000∼15만 원. 1544-1555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