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가 설악산 봉정암에 갔을 때다. 밤하늘의 별이 유난히 빛났다. 법당에서 낭랑한 독경 소리가 들린다. 동행한 시인이 물었다.
“불자들이 저 뜻을 전부 알고 염불을 합니까?” “아뇨, 모르고 합니다.”
놀라는 시인에게 저자가 말한다. “시인께서는 저 밤하늘의 별 이름을 얼마나 알고 계세요? 별자리 이름을 몰라도 별은 저렇게 아름답지 않습니까. 별을 알고 지식이 많다고 별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게 아닙니다.”
숲 기행도 마찬가지다. 나무와 꽃, 새와 곤충 이름을 미리 공부할 필요가 없다. 숲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애정을 가지며 숲을 어떻게든 잘 보호해 후손에게 물려주려는 마음만 있으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사찰생태연구소 대표인 저자는 그런 마음으로 전국의 명산대찰을 찾았다. 사찰 주변 숲의 나무와 꽃뿐 아니라 새와 물고기, 어류와 곤충의 희귀종 멸종위기종 천연기념물 등 숲 속 생물의 생태를 꼼꼼히 기록했다.
제주 한라산의 관음사 숲은 세계적인 왕벚나무 원산지다. 어린 나무부터 수령 200년의 노거수까지 섞여 있다. 이 숲은 곶자왈이라는 제주 방언으로 불리는데 크고 작은 나무와 돌이 헝클어진 숲을 뜻한다. 용암이 돌과 바위로 변하면서 돌밭을 이룬 척박한 지대에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이끼류와 나무가 생겨난 ‘영겁의 시간’을 간직한 숲이다.
저자는 산사 108곳의 숲을 기행했다. 이 책에는 경기 과천시 연주암, 강원 원주시 구룡사 등 산사 12곳의 생태가 담겼다.
숲 관련 책을 꾸준히 내온 산림학자 차윤정 씨의 ‘숲의 생활사’(웅진지식하우스)는 계절 변화에 따라 숲이라는 거대한 생명체가 탄생, 소멸을 거쳐 부활하는 과정을 에세이 형식에 담았다. 숲은 한가롭고 고요한 세계가 아니라 한정된 자원을 둘러싸고 식물들이 치열하게 투쟁하는 공간이다. 여름에는 무성한 잎에 가려 숲에 들어오는 빛이 현저히 준다. 키 작은 식물들은 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삶을 시작한다.
나무와 꽃 이야기가 담긴 책은 집에서 몰두하며 볼 게 아니다. 따사로운 봄날 어린 자녀와 손잡고 숲을 찾아 함께 읽을 만한 책으로 ‘김태정 선생님이 들려주는 우리 꽃 이야기’(랜덤하우스코리아)가 있다. 우리 꽃, 나무 104종에 얽힌 전설, 식물과 관련된 전통 문화, 야생화 연구가인 저자가 야생화를 찾아 전국을 누비며 겪은 이야기를 소개했다.
숲에는 식물만 있지 않다. ‘꽃과 곤충 서로 속고 속이는 게임’(지오북)은 상대를 속이고 속는 관계인 꽃과 곤충의 기막힌 생태를 150여 장의 사진과 함께 보여준다. 곤충에게 가능한 한 꿀을 덜 빼앗기고 꽃가루는 최대한 묻혀 보내려는 꽃들의 사투가 흥미롭다.
‘나를 부르는 숲’(동아일보사)은 여행 작가 빌 브라이슨이 미국의 험난한 등산로인 ‘애팔래치아 트레일’을 종주한 여행기다. 동행한 ‘못난이’ 친구와 겪은 유쾌한 에피소드 뒤에 숲의 온화한 힘에 대한 존경이 묻어난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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