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라면을 먹을 때 이웃집 미미는 TV 채널을 돌린다. 미미가 TV 채널을 돌릴 때 이웃집의 이웃집 디디는 비데 단추를 누른다. 디디가 비데 단추를 누를 때 그 이웃집의 유미는 바이올린을 켠다. 유미가 바이올린을 켤 때 이웃마을 남자아이는 야구시합에서 방망이를 휘두른다….”
내가 맛있게 라면을 먹고 있는 바로 그 순간에 내 옆집에서는, 우리 동네에서는, 우리나라에서는, 그리고 이 세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이 그림책은 미미, 디디, 유미처럼 이름을 아는 가까운 이웃 친구부터 시작해 이웃마을의 이름 모를 남자아이, 이웃마을의 이웃마을에 사는 어떤 여자아이, 이웃마을의 이웃나라의 남자아이, 또 그 나라의 맞은편 이웃나라의 여자아이까지 관심의 영역을 점점 확대해 나간다.
“이웃마을 남자아이가 방망이를 휘두를 때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는 달걀을 깬다. 그 이웃마을 여자아이가 달걀을 깰 때 이웃나라 남자아이는 자전거를 탄다. 이웃나라의 남자아이가 자전거를 탈 때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아기를 본다. 이웃나라의 이웃나라 여자아이가 아기를 볼 때 그 이웃나라 여자아이는 물을 긷는다….”
그림책 앞부분에 나오는 아이들의 세계는 평화롭다. 아이들은 안전한 집에서 맛있게 라면을 먹고, TV를 보고, 바이올린을 연습한다. 하지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와 다른 세계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과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어떤 아이는 물을 길어야 하고, 어떤 아이는 소를 몰며, 또 어떤 아이는 빵을 판다. 그리고 또 어떤 아이는 길 위에 쓰러져 있다.
경제적 어려움 없이 풍족함을 누리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모르는 세상의 또 다른 현실을 자연스럽게 일깨워줄 수 있는 그림책이다.
친구의 이웃, 그 이웃의 이웃, 또 그 이웃의 이웃처럼 세상은 어떤 식으로든 서로가 연결돼 있음을 일러주는 이 책은 조금만 먼 곳으로 눈을 돌려 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 아이들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을 두지 않고 나만 행복하다면 그것이 진짜 평화, 진정한 행복일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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