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번갈아 아이디어 내고 작품완성은 상대방에 맡겨
들어갈까 말까. 솔직히 좀 망설여진다. 전시장 복도 끝에 자리한 공간엔 문 없이 바닥에서 60cm 높이로 구멍만 뚫려있다. 위아래 모두 나무로 막힌 안으로 들어가려면 정비소에서 쓰는 바퀴달린 등받이 차에 드러누워야 한다. 마침내 결심한다. 좁고 컴컴한 공간으로 미끄러져 가니 바닥과 천장이 뒤집힌 느낌. 그 속에서 홀로 유영하는 기분은 불편하면서도 자유롭다. 우주선에 오른 듯, 고래 배 속에 들어온 듯.
5월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신사동 아뜰리에 에르메스에서 열리는 박미나(36), 잭슨 홍 씨(38)의 공동전에 선보인 ‘퍽(Puck)’. 관람객에게 낯선 체험을 제안하는 이 작업에선 둘의 발랄한 상상력이 시너지로 작동한다. “바닥을 올리고 싶었다.”(박 씨) “천장을 내리는 것을 상상해봤다.”(홍 씨) 공간을 가지고 작업하고 싶었으나 한 번도 기회가 없었다는 두 작가의 의기투합이 신기한 작품을 만들어냈다.
이번 전시는 서로 결이 다른 두 미술가가 한시적 공동작업을 시도한 뒤 그 결과를 발표하는 자리다. 상대의 작업방식과 의견을 존중하며 만든 작업에선 신선한 발상과 파격이 주는 재미가 쏠쏠하다. 02-544-7722
○ 열린 마음, 열린 작업
다양한 색상의 펜으로 가로선을 죽죽 긋거나, 컴퓨터의 이미지 문자인 ‘딩뱃’ 회화 시리즈를 통해 시각언어의 기본요소를 탐구해 온 박 씨. 자동차 디자이너 출신으로 사용이 ‘불가능’한 디자인 오브제를 발표해온 홍 씨. 전복적 아이디어와 본질에 대한 탐구로 주목받은 이들은 공동전시를 위해 열린 마음으로 열린 작업을 시도했다. 전시를 이어주는 상징적 키워드는 ‘자동차’. 평행을 달리다 충돌하는 자동차처럼 각기 다른 아이디어와 제작 방식이 엇갈리고 부딪치며 서로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됐다.
‘미나가 만든 잭슨 작품’을 보자. 홍 씨가 제안한 자동차의 충돌이미지는 박 씨의 손을 통해 만화적 구도와 팝 아트 스타일 회화로 완성됐다. ‘잭슨이 만든 미나 작품’은 그 반대의 과정을 거쳤다. 박 씨가 컴퓨터에서 내려받은 딩뱃 폰트를 캔버스에 배열한 회화 2점을 홍 씨에게 건네주었다. 두 그림은 홍 씨의 디자인 프로세스에 맞추어 해체와 재결합을 거치며 플라스틱 부조로 변신한다.
이들 작업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최종 소유한다. 현대미술에 있어 아이디어와 제작, 유통에 대한 흥미로운 실험을 시도한 점도 이번 전시의 매력이다.
○ 이해하기보다 즐기라
전시장 바닥과 2m 높이 나무상자 위에 장난감 같은 색색의 아크릴 오브제들이 잔뜩 널려있다. ‘미나와 잭슨의 공동작업’에 속하는 ‘라마라마 딩동’이란 설치작업이다. 여기에 벽에 세워둔 노란색 오리가 달린 빗자루, 팝송이 흘러나오는 구식 카세트까지 한 작품을 이룬다. 홍 씨는 새 딩뱃 폰트를 디자인한 뒤 이를 입체 오브제로 만들었고, 박 씨는 회화를 그리듯 공간에 이들을 배치했다.
공동작업을 통해 회화와 디자인 등 서로의 영역에 대해 알 수 없었던 것을 경험하고 작업 맥락이 확장되는 과정을 즐겼다는 두 작가. 작품의 내용을 묻자 난감해한다. “현대미술의 속성이 그렇듯, 아무리 친절해도 불친절한 영역이 남는다.”(홍 씨) “작가의 의도를 온전히 설명한다고 작품의 해답을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관찰자라고 생각한다. 내가 관찰한 것을 다른 사람은 어떻게 바라보는지 궁금할 뿐이다.”(박 씨)
‘이해’나 ‘해석’에 대한 부담을 떨치고 그냥 내키는 대로 보라는 주문이다. 오리 빗자루에 담긴 ‘무슨 짓을 한 거야’라는 문구처럼 이번 전시가 정답이 아닌 의문을, 일방통행이 아닌 쌍방형 대화를 지향하는 이유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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