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의 아동도서전이 열리고 있는 이탈리아 볼로냐의 도서전시장. 랜덤하우스, 펭귄 등 이곳에 참가한 해외 대형 출판사들의 신간 포스터에서는 이런 판타지적 요소를 공통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부스 전면에 내놓은 대형 포스터는 출판사가 주력으로 ‘미는’ 작품임을 감안한다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판타지문학 작품이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이화정 웅진주니어 대표는 “경기불황의 여파로 해외 출판사가 내놓은 신간이 예년보다 줄었음에도 청소년 대상 판타지물은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 청소년문학 시장에서 판타지 작품이 출간되기 시작한 것은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가 성공을 거둔 뒤부터다. 이런 흐름은 최근 책, 영화 모두에서 성공을 거둔 스테프니 메이어의 ‘트와일라잇’ 흥행 이후 또 한 번 가속화됐다. 특히 ‘트와일라잇 신드롬’으로 불리며 10대를 중심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 작품은 판타지적 설정을 유지하면서도 동시대, 실제 세계를 기반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일명 ‘도시 판타지(urban fantasy)’, ‘현대형 판타지(contemporary fantasy)’를 새롭게 부각하는 계기도 됐다.
하지만 한국 상황은 이런 추세와 한참 동떨어져 있다. 어린이창비나 비룡소 등 아동출판사에서 주관하는 청소년문학상이 생긴 게 불과 2년 전일 정도로 청소년 문학은 걸음마 단계다. 송정하 비룡소 저작권팀 팀장은 “국내에서는 뱀파이어 등 장르 문학적인 요소들이 나오면 ‘황당무계’하다고 생각한다”며 “아동물이라면 흥미보다 교훈이나 학습효과가 있는 명작 위주로 구성돼야 한다는 인식도 여전히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국내에선 해리포터 외에는 성공을 거둔 장르문학 작품이 전무하다시피 하다.
해리포터나 트와일라잇은 책뿐만 아니라 영화, DVD, 음반 등 다양한 콘텐츠로 재가공돼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있다. 이런 콘텐츠는 하루아침에 탄생한 것이 아니다. 오랫동안 가벼운 읽을거리로 선호돼 온 뱀파이어, 하이틴 로맨스류의 장르적 저변이 구축돼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국에서는 왜 이런 대작들이 나오지 않는지 고민하기 전에 책이나 문학에 대한 엄숙주의가 문학의 다양성을 가로막고 있는 건 아닌지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볼로냐=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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