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밥솥이 놓인 장판 밑으로 이상한 얼룩이 생기기 시작했다. 얼룩은 바이러스처럼 바닥에서 번식하기 시작했다. 혼자 사는 남자들이 다 그렇게 생활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해보면 십년 가까운 내 자취생활은 방안에 조금씩 얼룩을 들이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묻혀온 얼룩으로 방은 하루하루 어두워져 갔고 나는 아침마다 그 얼룩에서 부스스 일어나 다시 밖으로 나가곤 했다. 처음 보는 얼룩도 다음 날이면 금세 익숙해졌다.
하루는 맘먹고 걸레에 물을 적셔 방안을 닦기 시작했다. 그때 문제의 얼룩이 눈에 띄었다. 손끝에 힘을 주어 닦아냈다. 걸레를 뒤집어 보니 새까만 먼지와 함께 머리카락이 몇 가닥 묻어나왔다.
얼룩을 따라가며 바닥을 닦았다. 얼룩은 전기밥솥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때 전기밥솥에 ‘물받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물받이’에는 그동안 끓어 넘친 밥물이 찰랑찰랑 고여 있었다. 그 위로 초록색 곰팡이가 외계인처럼 둥둥 떠 있었다.
나는 당장 면봉과 분무기를 동원해 대대적인 밥솥 청소를 시작했다. 손이 닿지 않는 틈새는 분무기로 물을 뿌린 뒤 면봉으로 닦아냈다. 생각보다 밥솥에는 빈틈이 많았다. 면봉이 모자랄 지경이었다.
깨끗해진(?) 전기밥솥을 이웃집 기와지붕 위에 올려놓았다. 딴에는 소독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주변 집들이 모두 1층이어서 내가 사는 2층 방문을 열면 바로 이웃집의 지붕이 보였다. 기와지붕 위에 비스듬하게 밥솥을 올려두고 태양을 향해 뚜껑을 열었다.
쌀이 익어가던 공간 속으로 햇빛이 가득 찼다. 골목길 어딘가에서 여자아이 웃음소리가 들렸다. 나는 밥솥 옆에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면서 그 웃음소리가 참 간지럽다고 생각했다. 봄이었다.
뚜껑이 열린 밥솥 안으로 손을 넣어 보았다. 둥글게 고여 있던 햇볕이 따뜻하게 내 손을 마주잡았다. 크림슨 색의 기왓장이 한낮의 햇빛 속에서 출렁거리고 있었다.
밥솥의 뚜껑을 닫았다. 그리고 나는 따뜻해진 밥솥을 끌어안고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200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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