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미술 감상 길잡이 20선]<10>아주 특별한 관계

  • 입력 2009년 3월 27일 02시 58분


《“만남과 이별이 역사를 만들고 예술을 일군다. 그 만남의 상공을 배회한 열망을 더듬어 가는 일은 서양미술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과 동등한 가치를 지닌다고 나는 여긴다. 그것이 순정한 사랑이든 애정이든 집착이든, 또는 단순한 우정이든 규정지을 수 없는 기묘한 인연이든. 근·현대 미술사에 빛나는 작가들의 작품과 그들에게 바치는 연서라 할 만한 나의 그림을 함께 묶은 것이 이 책이다.”》

그녀 없는 그, 그 없는 그녀였다면…

고독한 몸부림에서 예술이 피어나기도 하지만, 예술가도 ‘사회적 동물’이다. 이 책은 예술가가 맺은 특별한 관계에 주목했다.

프리다 칼로와 디에고 리베라, 알마 말러와 오스카 코코슈카, 오노 요코와 존 레넌…. 칼로는 리베라에 대한 고통스러운 애증을 동력 삼아 피투성이 자화상 시리즈를 그렸고, 코코슈카는 말러와 헤어진 뒤 죽을 때까지 65년간 실연의 상처를 부여안고 표현주의 걸작을 만들었다. 화가인 저자는 “예술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의 파트너십”이라면서 “모든 일이 인연에 따라 달라지며 여러 인연과의 합동 작업이었음을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고 말한다.

초현실주의를 창시한 세 사람, 시인 폴 엘뤼아르(1895∼1952), 화가 막스 에른스트(1891∼1976)와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관계는 한 여인을 사이에 두고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갈라’라 불렸던 슬라브계 여인 엘레나 디미트리예브나 디아코노바(1894∼1982).

풋내기 시인 엘뤼아르와 1917년 결혼한 갈라는 1920년대 초 자기 집에 머물던 에른스트와 삼각관계를 이어가더니 1932년 무명 화가 달리와 새 삶을 시작한다. 세상은 수군댔다. 이 미친 사랑은 곧 끝장날 거라고. 하지만 달리와 갈라는 50여 년을 동행했다. 달리는 그림에 ‘갈라와 살바도르 달리’라고 서명했다. 그림 속 여인은 나이와 상관없이 모두 갈라였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달리는 갈라의 기획과 관리를 통해 인기 작가로 부상했다. 화가는 돈에 과도하게 집착했고 그 곁에선 늘 갈라가 웃고 있었다.

갈라에 대한 평가는 양 극단에 있다. 무명 예술가의 열정을 예술로 승화하도록 이끈 뮤즈 혹은 탐욕의 화신. 갈라는 지독한 에고이스트였지만 달리만은 어느 누구보다 깊게 이해했다. 저자는 “그들 부부만의 진짜 모습을 누가 알겠느냐”고 반문한다.

화가 마리 로랑생(1883∼1956)과 시인 기욤 아폴리네르(1880∼1918)는 사생아라는 공감대를 바탕으로 만나자마자 사랑에 빠졌다. 5년의 연애 기간에 둘 다 예술적 영광과 명성이 최고조에 달했다. 앙리 루소는 ‘시인에게 영감을 주는 뮤즈’라는 그림에 이들을 담았고, 로랑생은 ‘아폴리네르와 친구들’을 그렸다.

지독히도 개성 강한 이들은 상처만 남긴 채 헤어졌다. 아폴리네르는 전쟁 때 입은 부상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다. 이후 “나를 열광시키는 것은 오직 그림”이라고 못 박았던 로랑생은 38년을 더 살다가 아폴리네르의 편지를 가슴에 얹고 숨을 거뒀다.

서문의 제목 ‘오노가 레넌을 만나지 않았다면’은 이 책의 주제를 압축해 보여주는 한 문장이다. ‘과연 레넌이 없는 오늘날의 오노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또 오노가 없었다면 말썽꾸러기 레넌이 저항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등극할 수 있었을까. 그들의 만남은 서로를 고양시키고 거듭나게 한 하나의 사건이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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