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18세기 이전의 결혼은 ‘적과의 동침’

  • 입력 2009년 3월 28일 02시 59분


◇ 진화하는 결혼/스테파니 쿤츠 지음·김승욱 옮김/664쪽·2만5000원·작가정신

케냐의 루오 족은 바람직한 결혼 상대자를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그들은 우리의 적이고, 우리는 그들과 결혼한다.”

역사상 대부분의 기간 동안 결혼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이처럼 여러 가문이나 공동체들이 협동관계를 맺는 데 기여한다는 것이었다. 결혼은 특히 적대 관계나 불화를 빚고 있는 친족 집단 사이에 연대감을 만들었다.

서구에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 동맹으로 여겨지던 결혼이 남녀간 사적인 영역으로 넘어온 것은 18세기에 들어서였다. 이전까지는 사랑처럼 약하고 비이성적인 것을 바탕으로 배우자를 선택한다는 것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계몽주의가 확산되면서 서구에서는 사랑이 결혼의 근본적인 이유가 되어야 하며, 젊은이들은 사랑을 기초로 배우자를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새로운 결혼시스템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랑이 결혼의 절대적 요인으로 떠오를수록, 깨뜨릴 수 없는 철벽같은 결혼제도는 과거의 권위를 잃어버리게 됐다. 결혼생활에서 사랑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강해질수록 사랑이 식어버린 결혼을 더 유지할 의미가 없다는 생각으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각 문화권의 다양한 결혼제도와 변화상을 다룬다. 미국 현대가족위원회 및 워싱턴 주립 에버그린대학 등에서 역사와 가족을 연구하는 저자는 “결혼이 과거처럼 사람들이 서로에게서 애정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제도라는 위치를 되찾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럼에도 저자는 결혼 제도는 현대에도 여전히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으며 새로운 현실에 맞게 사회적인 지원시스템을 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강수진 기자 sj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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