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생태계 대재앙 경고하는 ‘꿀벌실종 미스터리’

  • 입력 2009년 3월 28일 02시 59분


◇ 꿀벌 없는 세상 결실 없는 가을/로완 제이콥슨 지음·노태복 옮김/334쪽·1만6000원·에코리브르

2006년 11월 중순 미국 플로리다 주에서 양봉을 하는 데이브 하켄버그 씨는 벌통들을 열어보고 기겁했다. 400개의 벌통에 꿀은커녕 빼곡하게 들어 있어야 할 벌들이 보이지 않았다. 인근의 다른 양봉업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이 의문의 ‘꿀벌 실종사건’은 ‘군집붕괴현상(CCD·Colony Collapse Disorder)’의 시작이었다.

뉴욕타임스와 뉴스위크 등에 음식과 환경을 주제로 글을 써 온 저자는 이 책에서 CCD의 원인을 추적하며 꿀벌의 실종이 인간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증언한다.

2006년 말 미국 북부에서 꿀벌들이 급격히 사라진 사건을 일컫는 CCD는 세계 곳곳을 강타했다. 유럽 전역을 비롯해 우크라이나 러시아 태국 중국 등이 피해를 봤고 그 결과 2007년 여름까지 북반구 꿀벌의 25%가 사라졌다. 남미도 심각한 피해를 봤다. 이후 아직까지 재발하지 않는 게 그나마 다행.

2007년 펜실베이니아주립대 학자들이 CCD 연구그룹을 조직하는 등 원인 찾기가 시작됐다고 한다. 사라진 꿀벌들은 벌통을 나선 뒤 어떤 이유에선지 다시 벌통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죽은 것으로 추정됐다. 연구자들은 벌에 치명적인 바이러스와 병원균, 벌 기생충, 벌 기생충을 죽이는 살충제 등 원인이 될 만한 요인을 모두 분석했지만 정확한 원인은 찾아내지 못했다. 알아낸 정보는 ‘CCD가 나타난 벌통의 꿀벌들은 여러 질병을 한꺼번에 앓고 있었고 면역체계가 망가져 있었다’는 사실. 일부 학자는 ‘벌의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꿀벌의 면역력 결핍 원인을 만성 스트레스에서 찾는다. 들판에서 꽃을 옮겨 다니며 먹이를 구하고 살아가는 자연적인 방식이 아니라 인위적인 꽃가루받이를 위해 트럭에 실려 다니며 옥수수시럽을 먹고, 살충제와 항생제를 투여 받는 삶이 스트레스를 준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각종 벌 진드기 살충제와 항생제는 서로의 독성을 강화하는 해로운 상승작용을 일으켜 벌의 면역체계를 급속히 파괴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저자는 꿀벌이 다시 사라지기 시작하면 양봉업계의 몰락뿐 아니라 농업 전체는 물론 생태계의 위기로 이어질 것이라고 경고한다. 가루받이를 시키는 대표적인 곤충이 꿀벌이기 때문. 전 세계 아몬드의 82%를 공급하는 캘리포니아 아몬드숲은 매년 1월 미국 전역의 벌통 절반을 동원해 가루받이를 한다. 꿀벌이 없으면 젖소의 먹이인 클로버와 자주개자리의 꽃가루 수정이 일어나지 않고 오이와 호박을 비롯한 박과(科) 식물은 식단에서 사라져야 한다. 각종 식량과 과일도 사정은 마찬가지.

저자는 꿀벌 실종사건으로 농업이 꿀벌에 의존한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새삼 이해하게 됐다며 꿀벌이 다시 사라지지 않게 하려면 양봉업자와 곤충학자, 환경운동가뿐 아니라 모두가 나서야 한다고 말한다.

“더는 땅을 거칠게 대하지 말아야 한다. 곤충들이 번식하도록 내버려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지 과수원만이 아니라 우리들이 애써온 노력들이 결실을 보지 못할 것이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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