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 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어쩌면 내 그림의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그것이 나의 야망이다.”》
영육 바쳐 그린 ‘뿌리 깊은 고뇌’
‘영혼의 화가’ ‘태양의 화가’로 불리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다. 이 책은 고흐가 평생의 후원자이자 변함없이 마음을 나눈 테오에게 쓴 편지들을 모은 것이다. 이 편지는 600통이 넘는다. 이 중 고흐의 삶과 사랑, 예술세계를 진솔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글들과 동료화가 고갱, 베르나르 등에게 보낸 편지, 테오가 형에게 보낸 답신들을 모았다.
이 책의 매력은 잘 알려지지 않은 고흐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준다는 것이다. 그것은 후대 평론가의 평가나 선입견, 세월 등으로 덧칠되지 않은 명화 ‘고흐’의 발견 자체이기도 하다.
고흐와 테오가 주고받은 여러 편지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단어는 잘 알려진 대로 돈과 사랑과 예술이다. 세 단어는 고흐의 삶을 평생 따라다니며 언제나 고통스럽게 그를 짓눌렀다.
수줍지만 내면에 뜨거운 불의 열정을 지닌 스무 살 청년은 19세의 하숙집 딸에게 구혼했다 거절당해 충격을 받는다. 몇 해 뒤 그는 사촌 케이에게 구혼하지만 다시 거절당한다.
“…나는 사랑 없이는 살 수 없고, 살지 않을 것이고, 살아서도 안 된다. 나는 열정을 가진 남자에 불과하고, 그래서 여자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얼어붙든가 돌로 변하거나 할 것이다….”
당시 실연의 아픔을 겪고 있던 고흐가 테오에게 보낸 내용이다. 동생의 도움으로 겨우 삶과 예술 활동을 지속하던 고흐의 인생에서 매춘부 시엔과의 만남을 빼면 그의 사랑은 언제나 좌절의 연속이었다. 하지만 그 상처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그림에 필사적으로 매달려야 했다는 점에서, 그 고통은 예술과 생명의 원천이 됐다.
고흐는 가족과의 화목한 관계, 단란한 가정을 꾸리는 평범한 사랑, 당대 화가로서의 성공적인 평가 등 그 어느 하나도 손에 쥘 수 없었다. 그런 그에게 테오는 경제적 후원자일 뿐 아니라 언제나 매달릴 수 있는 정신적인 버팀목이었다. 하지만 이 편지에는 고흐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할 수 있는 글도 실려 있다. 테오는 형이 프랑스 남부로 떠나자 여동생 윌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 아파트에서 나 혼자 남고 보니 텅 빈 느낌이구나. 형은 새로운 생각의 ‘챔피언’이거든. 물론 하늘 아래 새로운 건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생각한다면, 더 정확히 말해 낡은 생각들을 뒤집는 일의 챔피언이라 하겠지.”
고흐는 1890년 7월 27일 스스로 가슴에 총을 쏴 다락방의 침대 위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상태로 발견됐다. 이틀 뒤 고흐는 동생의 품에 안긴 채 “이 모든 것이 끝났으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숨을 거뒀다. 공교롭게도 고흐가 죽은 지 6개월 후 테오도 갑자기 건강이 악화돼 3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떴다. 고흐는 사망할 당시 지니고 있던 부치지 않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화가는 무슨 생각을 하든, 돈 이야기는 본능적으로 피하려고 한다. 그래, 정말 우리 화가들은 자신의 그림을 통해서만 말할 수 있는 것 같다.…그래, 내 그림들, 그것을 위해 난 내 생명을 걸었다. 그로 인해 내 이성은 반쯤 망가져 버렸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