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아비역은 언제나 힘들어요” “가산 모두 털어도 행복”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8분


25년 만에 일곱아들 홀아비역 다시 맡은 오현경 씨

“아비역은 언제나 힘들어요”

그들이 돌아왔다.

연극배우 오현경 씨(73)와 최종원 씨(59)가 대학로 무대에서 봄을 맞는다. 오 씨가 25년 전 초연한 연극 ‘봄날’의 아버지 역을 다시 맡았으며, 최 씨도 연극 ‘기막힌 사내들’에서 17년 만에 고물상 주인인 던 역을 연기한다. 연습에 분주한 두 배우를 지난달 31일 각각 서울 동작구 장승배기와 종로구 대학로 연습실에서 만났다.

○ 연극 ‘봄날’ 22일부터

“나, 검은색으로 염색할까봐.”

연극 ‘봄날’에서 일곱 아들을 둔 홀아비 역을 처음 맡은 게 48세였다. 20대부터 노인 역을 자주 맡아온 오 씨로서도 당시 아비 역은 쉽지 않은 일. 그로부터 25년 뒤. 73세가 되어 같은 역을 맡는 소회를 묻자 오 씨는 “만만치 않다”고 답했다. “지금 이 나이에 이걸 또 하려니, 허허. 그 작품 올리고 1년 후에 위암 식도암 디스크 수술을 하느라 전신 마취를 4번이나 했어요. 이젠 할아버지로 보겠지. 하지만 무대에서 날 본다면 생생할 거요. 직업의식이라는 게 무섭거든.”

1984년 극단 성좌가 초연한 연극 ‘봄날’(이강백 작·이성열 연출)은 후미진 산골마을 홀아비와 일곱 아들의 이야기다. 절간 스님들이 놓고 간 동녀라는 아낙을 놓고 그를 품고 자려는 욕심 많은 아버지와 젊은 혈기의 아들이 충돌한다. 서울연극제 참가작으로 이번이 4번째 공연이다. 오 씨는 “초연 당시 ‘아름답다’는 평을 참 많이 들었다”며 “예전 잔상이 남아있긴 하지만 다시 무대에 서려니 이상하게 겁도 나고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하지만 잠시 후 그는 배우론을 펼치며 마음을 다잡는다. “소위 배우란 젊은 배우든, 늙은 배우든 무대에 서면 양해가 안 되는 법이에요. 관객은 냉정하니까요.”

드라마는 2006년 ‘누나’가 마지막이었지만 연극 무대는 쉬지 않았다. 다음 작품 계획을 묻자 그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나는 기약 없는 사람입니다.”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아르코 예술극장 대극장. 02-744-7304

배고팠던 시절 고물상 주인역 다시 맡은 최종원 씨

“가산 모두 털어도 행복했죠”

○ 연극 ‘기막힌 사내들’ 17일부터

“이력서에 추가한 한 줄이 아닌 내 인생에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해요.”

올해로 배우 인생 40년을 맞는 최 씨는 7년 만에 대학로에 돌아왔다. 복귀작 ‘기막힌 사내들’(데이비드 마멧 작·구태환 연출)은 17년 전 주연을 맡았던 작품이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2001∼2004년)까지 지낸 최 씨가 2002년 MBC 마당놀이 이후 무대에 서지 않은 이유는 “생각은 상업이요, 정신은 순수, 배우에겐 희생을 요구하는 대학로에 염증을 느꼈기 때문”이다. 무대에 대한 갈증은 2004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미국 댈러스에서 교민을 위한 공연을 통해 풀었다.

미국 시카고의 허름한 고물상을 배경으로 한 ‘기막힌 사내들’은 주인 던과 친구들이 들소가 그려진 동전을 고가에 사간 사람의 집을 털기로 모의하며 시작된다. 그는 “보잘것없는 소시민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블랙코미디”라며 “초연할 때 공연을 본 개그맨 최양락 씨가 내 평생 이렇게 웃어보긴 처음이었다고 말할 정도”라고 말했다.

원제가 ‘아메리칸 버펄로’인 이 작품은 그에게 여러 의미가 있다. 한국어 제목은 그의 아이디어다. 장진 감독의 제의로 1998년 같은 이름의 영화에 주연을 맡기도 했다. 이 작품을 처음 무대에 올렸던 17년 전, 배고픔을 무릅쓰고 무대에 선다는 사실만으로 배가 불렀다.

“작품을 공연하는 데 1500만 원이 든다기에 배우 세 명이서 500만 원씩 갹출했어요. 그 돈이 없던 한 배우는 표를 팔았죠. 그렇게 작품이 좋아, 연극 무대가 좋아, 가정은 포기했어요. 이 작품은 그런 작품입니다.” 17일부터 6월 14일까지 서울 대학로 원더스페이스 세모극장. 02-744-1355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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