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악만의 연주기법 살려 오늘 예술의 전당서 연주회
1967년생 양띠 네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해금연주자 강은일 숙명여대·경희대 겸임교수, 음악평론가 겸 작곡가 박진영 김포대 교수, 바이올리니스트 유시연 숙명여대 교수, 이윤경 국악방송 사업개발팀장. 이들이 모일 때마다 서양 음악과 국악이 만나고, 싸우고 화해하길 반복한다.
처음 시작은 이랬다. 2006년 유 교수가 바이올린으로 국악의 미묘한 맛을 살려 연주하고 싶어 하자 오랜 친구인 박 교수가 대학 동창인 이 팀장을 소개해줬다. 이 팀장을 통해 유 교수가 강 교수에게 해금을 배우면서 4인의 ‘양떼 모임’이 만들어졌다.
○ 넷이 함께 만든 ‘아리랑’
이 모임의 첫 결실은 2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유 교수의 ‘민속음악 리사이틀’이다. 그는 세계 민속음악과 함께 우리 아리랑을 국악연주기법을 살려 바이올린으로 선보인다.
유 교수는 국악만의 리듬, 시김새(꾸밈음), 농현(현악기 연주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어 여러 장식음을 내는 기법) 등을 살려 서양악기로 연주할 수 있는 아리랑 악보를 만들고 싶었다. 서양음악 작곡가들에게 부탁하니 서양음악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아리랑을 만들 뿐이었다. 국악 작곡가들은 “바이올린으로 연주해봐야 밋밋해서 맛이 나지 않는다”며 고사했다.
“아리랑은 잘 알려진 가락이지만 그 음만으로 악보를 그려 서양악기로 연주하면 국악 맛이 제대로 나지 않아요. 국악의 농축된 음색, 짙고 여림의 농담(濃淡), 깊고 옅음까지 서양악기로 표현하기는 여간 어렵지 않은 일이죠.”(박)
여러 특색을 지닌 아리랑 중에 바이올린으로 접근이 가능한 아리랑을 찾아야 했다. 이 팀장은 국악방송이 보유한 아리랑 음원을 찾아 들려줬다. 양준호 작곡, 김경아 피리연주, 원장현 대금연주 등 5개 음악을 선별하고 채보했다. 서양음악과 국악을 두루 경험한 박 교수도 조언을 보탰다. 악보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유 교수는 2년 전부터 강 교수에게 해금을 배우고 있다. 기초반부터 시작해 지금은 ‘정악’을 연주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국악은 국악기로 연주하는 게 당연히 최고죠. 하지만 정간보가 아닌 오선지에, 장단이 아닌 박자표로, 시김새 기호 대신 꾸밈음을 악보에 담아 서양악기로 한국의 맛을 표현해내면 누구든 아리랑을 손쉽게 접할 수 있고 연주할 수 있겠지요.”(유)
그는 “브람스가 편곡한 ‘헝가리 무곡’이 없었더라면 아직 많은 이가 헝가리 민속음악을 잘 모르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서양음악과 국악, 서로를 이해하다
“처음 해금 배울 때 답답해 죽는 줄 알았어요. 느려졌다 빨라졌다 도무지 박자를 맞출 수가 없더라고요.”(유)
“국악에는 ‘박(박자)이 없구나’라고 생각할 수가 있는데, 세는 게 서양음악과 달라서 그래요. 국악은 호흡박이라 하고 양악은 심장박이라 하잖아요?”(강)
“서양음악은 테크닉을 배우는 일부터 시작인데, 해금은 첫 시간부터 ‘음과 음을 뛰어다니면서’ ‘자연스러운 소리’ 같이 도가 터야 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테크닉은 그 다음이고요.”(유)
이야기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평생 배워온 음악이 아닌 다른 장르에 접근하는 만큼 궁금증과 타산지석의 아이디어도 많다.
“서양음악과 국악 간 서로에게 없는 장점을 공유해야지요. 국악 용어도 있지만, 대중이 쉽게 받아들이려면 서양음악의 틀로 설명해야 하는 것처럼. 다양한 시도를 통해 두 음악 간 화학적 반응이 일어나야지요.”(이)
“서양음악은 하나의 음이 그 소리를 내면 끝인데, 국악은 달라요. 음 하나를 누르고 꺾고 틀고 여러 질감으로 표현하죠. 음 하나에 우주가 담겨 있다고나 할까?(웃음) 난 아리랑을 들을 때마다 눈물이 왈칵 나더라.”(박)
양떼모임이지만 음악에 관한 자기반성과 비판도 이어진다. “인도만 해도 ‘4분 음표 뒤에 4분의 1 정도 꾸밈음 넣어줘라’는 식으로 옛 음악 연주법 체계를 갖춰 놓았다.” “한국에서 클래식 음악은 지나친 엄숙주의로 원래 음악의 정신을 잃고 있다.” “국악이 기존 음계 대신 서양음악의 7음계로 연주하니 고유의 느낌이 사라져 안타깝다.”….
존댓말로 시작한 모임이 어느덧 동갑내기들의 ‘수다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조이영 기자 ly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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