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애드리브도 안되면 건너뛰기도
연극 ‘강철왕’을 봤습니다. 그렇게 긴 대사를 어떻게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울 수 있나요. 대사가 막혔을 때 대처법도 궁금합니다.(이진아·26·서울 성북구)
‘(상략) 내가 옛날 짐 자진거를. 바쿠는 오도바이만 허고 쇠똥가리 철심들이 사쩜이인치 박격포 포신만치 이러고 튼실해서 코란도랑 부딪쳐도 멀쩡한 옛날 짐 자진거를….’
지난달 29일 막을 내린 연극 ‘강철왕’의 긴 대사입니다. 대사를 읊느라 허공에 사정없이 침을 튀기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은 느낌이 들더군요. 이 작품에서 아버지 역의 조영규 씨는 완벽하게 외우기까지 1000번 정도 읽는 것보다 중요한 건 ‘주제파악’이라고 말합니다. “이 긴 대사에서 하고 싶은 얘기가 뭔지 정확한 흐름을 잡으면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외우는 건 그 다음 문제”라는 것이죠.
물론 주제 파악조차 안 되는 대사도 있습니다. 작품에서 독일어 중국어 프랑스어 탄자니아어까지 나오는 대사는 녹음테이프를 무한 반복으로 들으며 단순암기 했답니다. 조 씨는 “죽어도 안 외워지면 배우로선 그냥 죽는 게 낫다”는 마음가짐으로 외웠다고 합니다.
16일 시작되는 연극 ‘피카소의 여인들’은 네 명의 여배우가 번갈아 독백을 하는 작품입니다. 여기서 올가 역을 맡은 서이숙 씨는 40분 분량의 14쪽 대사를 외웁니다. 서 씨가 주로 쓰는 암기법은 연상되는 그림 그리기입니다. 대본을 처음 읽고 별도의 메모장에 대사를 아예 그림으로 옮긴다고 합니다. 얼마 전 연극 ‘39계단’을 마친 이석준 씨도 “항상 무대 위에 서 있다고 생각하면서 글자를 머리로 외는 게 아니라 몸으로 먼저 외운다”면서 “그러면 해당 동작을 하기만 해도 대사는 저절로 튀어 나온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대사가 막히면 어떻게 대처할까요. 배우들은 한 장면을 건너뛰는 것이 대체적으로 많이 쓰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몇 년 전 한 연극에서 대사를 못 외운 배우가 여러 번 건너뛰는 바람에 공연이 30분 만에 끝났다는 웃지 못할 일화도 전해집니다. 얼마 전 ‘뉴욕 안티고네’에서 경찰관 역을 맡으며 긴 대사를 소화한 배우 정만식 씨는 “배우가 말문이 막히는 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라 집중을 못했기 때문”이라며 “그럴 경우 대부분의 배우는 애드리브를 통해 상황을 모면하지만 몸을 잠깐 돌려 생각할 시간을 벌거나 그것도 안 되면 고개를 숙인 채 나가는 후배 배우들도 봤다”고 말했습니다.
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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