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진다면 랭보나 장 콕토, 프란츠 카프카와 같은 반열에 오를 아방가르드 예술가입니다. 지금 당장 뉴욕에 내놔도 빠지지 않을 만큼 국제적이고 모던한 예술가로서 커트 코베인 같은 록 스타와도 닮았습니다.”
‘현대 이미지 연극의 거장’으로 꼽히는 리 브루어(72)는 한국의 전위적 시인 이상(1910∼1937)에 애착을 보였다.
그는 1일 서울 중구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에서 열린 연극 ‘이상, 열셋까지 세다’의 제작설명회에서 시 ‘오감도’뿐 아니라 소설 ‘날개’ 등 영어로 번역된 작품을 모두 봤다고 했다. 그는 ‘날개’에서 손님이 일본을 상징하고 나(노예)와 아내(창녀)는 식민지 백성을 상징한다는 정치적 해석을 작품에 녹여 넣을지 고민 중이라는 말도 했다.
재미교포 성 노 씨가 영어로 창작한 ‘이상, 열셋까지 세다’는 브루어가 2000년 서울연극축제에 초빙됐을 때 한국배우들과 공연한 작품이었다.
“이전 공연은 비속어(slang) 표현을 제대로 번역하지 못해 작품의 묘미를 살리지 못했습니다. 한국 관객은 비극과 희극을 함께 녹여내는 뉴욕식 블랙코미디에 익숙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지난해 블랙코미디 형식의 ‘인형의 집’을 공연할 때 관객들의 반응을 보고 이제 ‘이상…’을 다시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마침 창고극장의 정대경 대표가 한국 최고(最古)의 소극장으로 초대해 낡고 초라한 70석 규모의 소극장에서 ‘이상…’의 연출을 다시 맡아줄 수 있는가를 물었고 브루어는 이를 흔쾌히 승낙했다.
“창고극장 자체가 이상을 연상시켰습니다. 아웃사이더이지만 실험정신으로 똘똘 뭉쳐 있고 작지만 좋은 장비와 설비를 갖추고 있는 블랙박스와도 같습니다. 또 무대와 객석이 가까워서 영화의 클로즈업 효과를 낼 수 있다는 점에서 이상의 내면세계를 보여주는 데도 적격입니다.”
쌀밥을 젓가락으로 집어먹을 만큼 젓가락질에 능숙한 이 노대가가 연출할 ‘이상…’은 아직도 ‘발효’ 중이다. 창고극장은 그를 위해 4월 한 달간 연습장으로 극장을 내줬고, 극작가는 3분의 1을 개작한 새로운 대본을 보냈다. 1억여 원의 제작비를 부담한 가 갤러리가 이 작품에 미술적 상상력을 불어넣고 있고 240여 명의 배우가 지원한 오디션을 거쳐 선발된 4명의 배우는 ‘미지와의 조우’라고 느끼며 그의 독특한 연출 스타일을 습득하고 있다. 5월 1일∼6월 28일. 4만5000원. 02-319-8020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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