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에서 뛰어내렸다고요? 누가요? 901호요? 아파트 옥상에서요?”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2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 사무실. ‘웰다잉 연극단’ 배우 선발 오디션에 지원한 최명환 씨(61)가 대사를 읽기 시작했다. 기다리고 있는 지원자들과 심사위원들은 최 씨의 대사 한 줄, 몸짓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이날 오디션은 ‘삶과 죽음을 생각하는 모임’이 8월부터 시작하는 ‘잘 죽는 법’(웰다잉) 연극 공연에 참여할 아마추어 배우를 모집하는 자리. 이 모임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생전에 유서 쓰기, 무의미한 연명치료 거부하기 등 웰다잉 캠페인을 벌여왔다. 오디션 참가자는 20여 명. 40, 50대 중년 여성이 가장 많았지만 20대 청년부터 70대 노인, 가정주부에서 전직 교사, 회사원까지 참가자들의 연령과 직업은 다양했다.
오디션에 참석한 최 씨의 감회는 남달랐다. 30년 넘게 회사원으로 근무해 온 그는 2003년 신장암이 발견돼 오른쪽 신장의 3분의 1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2년 뒤에는 왼쪽 신장에서도 암이 발견돼 또 한 번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암 수술을 두 번이나 받고 나니 죽음이라는 것이 생생한 실체로 느껴지기 시작하더군요. 그래서 지난해 퇴직한 뒤 본격적으로 죽음에 대해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 영업맨에서 웰다잉 강사로 변신한 최 씨는 “죽음을 앞두고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겐 딱딱한 강연보다 연극이 훨씬 더 위안과 도움을 줄 수 있겠다 싶어 오디션에 참가했다”며 “연기 연습을 많이 못해서 붙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원자 대부분이 아마추어인 탓에 실수가 이어졌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만큼은 젊은 배우 지망생 못지않았다. 다른 지원자의 실수에 웃음을 터뜨리다가도 진지한 죽음 연기 앞에선 눈물을 흘리는 참가자들도 있었다.
심사위원장인 연극인 장두이 씨는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본 분들이라 배역에 대한 몰입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며 “웰다잉을 주제로 한 창작극을 만들어 8월부터 본격적인 공연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