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과 도시 공존의 현장을 가다]<2>美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 입력 2009년 4월 2일 02시 58분


지난달 24일 오후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모습이다. 도심을 흐르는 물길 위로 작은 유람선이 떠 가고, 강 양쪽에는 관광객과 산책 나온 시민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찻길보다 한 층 아래 조성된 강변 산책로는 카페 식당 호텔 등과 연결되고, 곳곳에 지상 및 강 건너편과 연결되는 계단, 다리가 있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지난달 24일 오후 샌안토니오 리버워크 모습이다. 도심을 흐르는 물길 위로 작은 유람선이 떠 가고, 강 양쪽에는 관광객과 산책 나온 시민들이 여유롭게 걷고 있다. 찻길보다 한 층 아래 조성된 강변 산책로는 카페 식당 호텔 등과 연결되고, 곳곳에 지상 및 강 건너편과 연결되는 계단, 다리가 있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빌딩숲에 숨겨진 8㎞ 산책로… 江과의 호흡이 시작된다

《오전 내내 봄비가 오락가락한다. 하지만 정오가 되자 제나 소만턴 씨(35)는 여지없이 사무실을 나선다. 오늘도 옆자리 동료 2명과 함께이다. 미국 텍사스 주 샌안토니오 시의 한복판에 있는 스위스계 융자회사 직원인 제나 씨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일과인 ‘강(江)과의 호흡’이 시작되는 시간이다. 사무실 앞 2차로의 횡단보도를 건너자마자 빌딩 사이사이로 난 작은 계단 입구가 여러 개 보인다. 계단에 접어들자마자 도시 풍경은 전혀 다른 화폭으로 바뀐다. 찻길 한층 아래에 강과 산책로, 우거진 나무들이 어우러진 별천지가 펼쳐진다. ‘지붕 없는 지하 세계’라고 부를 수 있는 곳에 폭 8∼10m의 강이 흐르고 양 옆엔 산책로가 이어진다. 》

도심 둘러싼 수로따라 먹을거리 볼거리 가득

툭하면 범람 골칫덩이

관광객 年 2000만명

고용 10만 효자로 변신

책로에는 카페, 레스토랑, 호텔 등이 맞닿아 있다. 레스토랑들은 강물 코앞까지 테이블을 내놓았다. 단골 멕시칸 식당의 야외 테이블에 앉은 제나 씨 일행은 타코와 소다를 주문한다. 흐린 날씨지만 산책 나온 직장인, 관광객들이 계속 지나간다. 유람선이 느릿느릿 제나 씨 옆을 떠간다. 승객들이 가이드의 유머에 박장대소하고 있다. 그 옆엔 아기 청둥오리들이 태연히 떠 있다.

식사를 마친 제나 씨는 강변을 따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카페, 호텔 등이 많은 구간을 벗어나자 길은 호젓해진다. 가는 비가 내리지만 빌딩 3∼5층 높이까지 뻗어 자란 무성한 나무들이 쉼 없이 이어져 거의 젖지 않는다. 돌을 깎아 만든 길은 그다지 미끄럽지 않다. 고개를 들어보면 지상 층엔 차들이 쉴 새 없이 지나고 높은 빌딩이 가득하므로 여기가 미국에서 7번째 큰 도시의 한복판인 건 분명한데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다운타운을 고리 모양으로 감싸고도는 강변길을 다 돌려면 8km가량을 걸어야 한다. 점심시간이 한 시간인 제나 씨는 산책길 곳곳에 만들어진 구름다리를 건너 코스를 단축한다.

시카고에서 대학을 마치고 10년 전 샌안토니오로 왔다는 제나 씨는 “오늘 저녁에 연극 동호회 모임도 ‘리버워크(River Walk·강변길)’의 카페에서 열린다. 밤늦은 시간까지 강가의 호젓함과 관광지의 활력이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다들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리버워크 없는 샌안토니오 생활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리버워크는 도시의 골칫덩이가 효자로 탈바꿈한 대표적 성공사례다. 총길이 384km의 샌안토니오 강은 텍사스인의 젖줄이지만 툭하면 범람했다. 1921년 대홍수로 지상 2.7m나 범람한 강물이 인근 거리를 덮쳤고 50명가량이 숨졌다. 도심 구간을 복개해버리자는 주장이 강하게 대두됐다. 하지만 건축가 로버트 허그먼이 범람을 막는 동시에 도심의 미적 자산으로 활용하자는 구상을 주도했다.

1937년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시작돼 댐, 수로와 더불어 산책로, 다양한 모양의 작은 다리들을 만들고 나무를 심었다. 1960년대 들어선 10년 단위의 다단계 종합 개발계획 아래 상업시설과 문화시설들을 강 주변으로 끌어 모았다. 강이 도심 구간에서 고리처럼 한 바퀴 돌아 나가는 형태로 물길이 만들어졌다. 그 물길을 따라 존 웨인 주연 영화로도 유명한 ‘알라모’ 유적을 비롯한 도심 기념물, 박물관, 극장 등이 연결된다.

1980년대 들어 고급 호텔과 컨벤션센터 등도 속속 들어섰다. 개발 프로젝트 진행은 강변개발국(SARA·San Antonio River Authority)이 주도하고, 지역 상공인, 주민들은 ‘파세오 델 리오(리버워크란 뜻의 스페인어) 연합회’를 결성해 리버워크에 생명과 활기를 불어넣는 다양한 문화 이벤트를 창출해 왔다. ‘강물 녹색으로 염색하기’ ‘루미나리에 축제’와 퍼레이드 등 다양한 이벤트가 연중 열린다.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안건혁 교수는 “샌안토니오는 물의 보존적 이용의 모범적 사례”라고 설명했다. 도시를 관통하는 20km 구간의 물을 그대로 바다로 내려 보내는 게 아니라 100% 재순환시킨다. 지하 20m 깊이에 지름 1.5m 관망을 형성해서 홍수가 나면 물을 담아두고, 가물 때는 뽑아 올려준다. 덕분에 연중 유람선이 다닐 수 있는 평균 1.5m의 수심이 유지되는 것이다. 그런 노력의 결과 리버워크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가 됐다. 샌안토니오의 관광산업은 2006년 기준 105억 달러 규모로 바이오테크놀로지, 군사기지와 더불어 도시 3대 산업 중 하나다. 인구 132만 도시에서 관광산업이 창출한 일자리가 무려 10만 개에 달한다. 걸핏하면 범람하고 주변을 우범지대로 만들었던 물길이 도심의 휴식과 소비, 관광이 유기적으로 어우러진 공간으로 바뀌면서 한 해 2000만 명의 관광객이 도시를 찾게 만드는 ‘꿀물이 흐르는 강’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샌안토니오=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자연보존 위해 청소할때 세제사용도 금지”▼

케빈 도너휴 리버워크 연합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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