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말, TV에 방송된 염색약 광고에서 찰랑거리는 생머리를 뒤로 넘기는 외국인 여자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 “난 소중하니까요.”
그 목소리 주인공은 1992년 KBS 공채 출신의 프리랜서 성우 이선(사진)이다. 우리말로 더빙된 영화에서 안젤리나 졸리, 카메론 디아즈, 올리비아 핫세(줄리엣), 모니카 벨로치 등의 목소리를 도맡아 연기했다.
만화영화 빨강머리 앤의 앤, 뽀롱뽀롱 뽀로로의 뽀로로, 둘리의 또치, 알프스소녀 하이디의 하이디, 세일러문의 루나·새틴·샤키·플루토가 모조리 이선의 목소리다.
그가 이번에는 자신만의 또 다른 목소리를 냈다. 이번에는 노래다. 항상 가수의 꿈이 있던 이선은 이번 ‘우먼 프로젝트 시즌 1’에 참여했다.
본업이 성우인지라 일과 음반 작업을 병행하느라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자기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서태지, 조용필 모두 그만의 노래 색깔이 있다. 우리가 노래방에서 히트 곡을 부를 땐 가수들이 만들어놓은 호흡을 흉내 내는 것이지, 자기 정서와 호흡으로 표현하는 게 아니다. 이번 우먼 프로젝트는 완전히 나를 깨부수는 새로운 작업이었다.”
이선은 평소에 노래 잘 한다는 칭찬을 여러 번 들었고 무대에 서는 상상도 많이 했지만, 실제로 참여해보니 절대 만만한 게 아니었다. 새로운 일에 뒤늦게 도전하면서 틀에 박히지 않은 자기 모습을 찾느라 힘들었지만, 대중문화에 기여하는 것 같아 자부심도 컸다.
평소에는 음료수도 마시지 않고 좋은 물을 골라 마시며 목을 관리한다. 이번에도 최상의 목소리로 우먼 프로젝트의 신곡 ‘이런 날’을 목에서 뽑아냈다.
변인숙 기자 baram4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