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그럴까? 홍어 명인 나주 영산포의 안국현 씨(53)는 고개를 흔든다. 홍어를 암수 구분해서 판 것은 기껏해야 30년도 안 되었지만, ‘홍어× 이야기’는 그보다 훨씬 오래됐다는 것이다. 안 씨는 ‘술안주론’을 내놓는다. 옛날 가난한 어민들이 막걸리 잔 기울일 때, 변변한 안주가 없었다. 그렇다고 시장에 내다팔 홍어에 손댈 수도 없었다. 결국 궁여지책으로 ‘손대도 표시 안 나는, 만만한 수컷 거시기’를 떼어다 안주로 삼았다는 것이다. 안 씨는 “길이 20∼25cm나 되는 그것 2개면 안주 한 접시는 나오고, 맛도 아주 좋다.”라고 말한다.
홍어는 어디가 맛있을까. 단연 반질반질 끈적끈적한 코를 으뜸으로 친다. 홍어 코를 먹어보지 못한 사람은 아예 홍어 맛을 논하지 말라고 할 정도이다. 홍어 코를 소금장에 찍어 한입 넣으면 ‘쎄에∼’한 맛이 혓바닥에서 코를 타고 올라가, 금세 눈물이 글썽글썽해진다. 정수리가 시큰하고 코끝이 찡하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두 번째 맛있는 곳은 날개, 세 번째는 꼬리를 꼽는다. 날개나 꼬리는 오돌오돌 씹는 맛이 그만이다. 중국요리 삭스핀 같다. 사람에 따라 1. 코 2. 홍어보리애국 3. 회(삼합) 4. 찜 5. 무침 순으로 맛을 매기기도 한다.
홍어는 9월부터 이듬해 3월까지가 산란기다. 흑산도 부근에서 겨울을 나며 알을 낳는다. 산란기엔 살이 꽉 찬다. 이땐 살이 차지고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흑산도 겨울 홍어 맛이 으뜸인 이유다. 흑산도 홍어는 뱃길로 나주 영산포에 닿았다. 옛날만큼은 못하지만 지금도 영산포 홍어거리엔 도소매점 40여 곳이 모여 있다. 4월 홍어축제(10∼12일)땐 전국 홍어 마니아들의 발길이 붐빈다. 서울에서 승용차로 ‘서해안고속도로→함평 나들목→나주 방면→나주시청→영산교’로 가면 된다.
안 씨가 2대 36년 동안 운영하는 홍어1번지(061-332-7444,061-333-1098) 코스요리가 유명하다. 홍어무침→삼합(흑산도산)→홍어전→홍어튀김→홍어찜→홍어보리애국 순. 4인 한상 6만, 8만 원짜리(2인 한상 4만, 5만 원) 두 종류가 있다. 삼합만 흑산도 것을 쓰고 나머지는 칠레 등의 외국산을 쓴다. 전국 택배주문도 받는다. 홍어젓갈(한 병 1만 원)도 맛있다. 영산포홍어(061-337-5000), 홍어마을(061-334-6556)도 오래된 집이다.
서울엔 종로구청 부근 두산위브 1층에 있는 목포집(02-737-9322) 삼합이 먹을 만하다. 홍어의 색다른 맛을 보려면 인사동 사동골목에 있는 오수집(02-735-5255)의 홍어청국장 샤부샤부가 권할 만하다.
요즘은 홍어보리애국 철이다. 된장 육수에 홍어애(내장)와 여린 보리 싹을 넣어 끓인다. 양념은 멸치, 다진 마늘, 파, 고춧가루, 다시마 등을 넣는다. 다 끓으면 마지막에 참기름 한 방울 또옥∼! 떨어뜨리면 된다. 톡 쏘는 알싸한 맛과 구수하고 시원한 국물, 그리고 여린 보리 싹의 풋냄새가 기가 막히다. 감기로 코 막힌 사람은 갑자기 콧속이 뻥! 뚫리고, 온몸이 후끈후끈 땀이 주르륵 흐른다. 찬 홍어와 뜨거운 막걸리의 궁합도 안성맞춤이다. 홍어의 톡 쏘는 맛이 늘 새롭게 느껴지는 것도 막걸리 덕분이다. 막걸리가 입안을 헹구어줘서 아무리 홍어를 먹어도 새롭게 ‘처음처럼’ 톡 쏘는 맛을 느낄 수 있다.
홍어는 껍질에 끈적끈적한 액체가 많이 묻어 있을수록 신선하다. 비린내가 없고 살이 꼬들꼬들하다. 흑산도 홍어는 황해바다처럼 등과 배에 누런 황토색이 있다. 칠레 아르헨티나 포클랜드 미국 뉴질랜드 등 외국산은 등이 검고 배가 희다. 홍어 맛은 어떻게 삭히느냐에 달려 있다. 잘못 삭히면 어부들이 말하는 ‘물 홍어’가 된다. 물 홍어는 살이 푸석하고 향이 거의 없다. 홍어는 항아리에 넣어 삭히는 게 보통이다. 옛날에는 삼베나 짚으로 싸서 두엄자리에 덮어두기도 했다. 두엄자리가 따뜻해서 쉽게 삭혀지기 때문이다. 홍어는 연잎을 닮았다. 연꽃은 진흙탕에서 핀다. 홍어도 시큼 퀴퀴한 뒷간냄새를 풍기면서 맛은 으뜸이다. 강호엔 고수들이 쌔고 쌨다. 홍어는 만만하다. 하도 곰삭아서 누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 하지만 잘못 먹었다간 입천장이 홀라당 벗겨진다.
잘 삭을수록 홍어 맛은 황홀하다. 사람도 곰삭을수록 웅숭깊다. 설익은 자들이 날뛰다가 칼 맞는다. 강호에선 만만한 사람들이 행복한 법이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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