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관우 뼈깎는 수술, 마취제 안쓰고서야…

  • 입력 2009년 4월 11일 02시 56분


제갈량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화공에 필요한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사진 제공 북카라반
제갈량이 적벽대전을 앞두고 화공에 필요한 동남풍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는 모습을 묘사한 그림. 사진 제공 북카라반
◇과학으로 보는 삼국지/이종호 지음/432쪽·1만3800원·북카라반

《적벽대전은 ‘삼국지’에 나오는 여러 전투 가운데 백미로 꼽힌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이 화공(火攻)으로 조조의 대군을 궤멸한다는 내용이다.

제갈량은 이 전투에서 돋보이는 역할을 한다.

특히 조조의 수군을 공격하기 위해 조조의 군대 쪽으로 동남풍이 불어야 하는 상황에서 그는 제를 지내 동남풍을 불게 했다고 삼국지는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바람을 부르는 일은 마법을 갖고 있지 않고선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 루쉰(魯迅)은 이 대목을 놓고 “제갈량의 지혜를 그린다는 것이 거의 요괴를 그린 것처럼 보인다”고 평하기도 했다.》

중국의 과학자들은 적벽대전이 겨울에 벌어졌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겨울에 창장(長江) 강 유역에선 동풍이 자주 불기 때문이다. 실제 다른 기록들을 보면 전투가 벌어진 시기를 음력 10∼12월로 적고 있기도 하다. 저자는 “중국학자들은 삼국지의 작가 나관중이 겨울에 창장 강 유역에서 동풍이 분다는 것을 알고 이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했으며 작품에선 제갈량이 바람을 불러오는 것으로 묘사한 것으로 본다”고 설명한다.

과학전문 저술가인 저자는 이처럼 삼국지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들을 과학적인 시각에서 분석했다. 그는 “삼국지 안에 숨어 있는 과학을 찾아내는 것이 이 책의 목표”라고 말한다.

장비는 술을 마시면 늘 실수를 했고 만취 상태에서 부하에게 살해당했다. 관우가 동오의 군대에 잡혀 죽은 뒤 장비가 복수를 위해 출정 준비를 하던 중 범강과 장달에게 살해된 것이다. 장비는 두 사람에게 병사들을 위한 흰 기(백기·白旗)와 흰 갑옷(백갑·白甲)을 사흘 안에 만들라고 명령했는데 범강과 장달이 좀 더 시간을 달라고 하자 이들을 채찍으로 때리면서 기한을 지키라고 했다. 이에 범강과 장달은 어차피 기한 내에 제작이 불가능하니 그렇게 죽을 바에야 먼저 장비를 죽이자고 결심하고 장비가 대취하고 잠들자 그를 살해했다.

술 때문에 목숨까지 잃은 장비의 주량은 어느 정도였을까. 정확한 계산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저자는 삼국지에 나오는 조조의 제문 중 ‘닭 한 마리와 술 한 말(두·斗)’이라는 말로부터 추정을 시작한다. 그는 “당대 술 한 말은 일반인이 마실 수 있는 주량을 뜻하는데 여러 기록을 보면 주당의 상한선을 10말로 기록했다”고 소개했다. 10말은 16L로 막걸리 16병에 해당한다. 저자는 “아무리 장사인 장비라 해도 단번에 마시는 게 쉽지 않은 양이며 장비가 주사를 부리는 것은 술을 잘못 배웠기 때문”이라고 추정했다.

신의(神醫) 화타가 관우의 팔을 수술하는 것도 삼국지의 명장면 가운데 하나다. 팔에 독화살을 맞은 관우를 치료하러 온 화타는 독이 뼛속까지 침투한 사실을 확인한 뒤 오염된 살을 도려내고 뼈를 긁어내는 수술을 실시한다. 관우는 다른 한 팔로 바둑을 두며 수술을 견딘다. 그러나 저자는 “뼈를 깎는 시술을 마취제도 없이 견디는 것은 불가능하다”면서 “시술이 아주 미미한 것이었거나 화타가 국부마취제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다”고 말한다.

책은 삼국지 이야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화타의 수술 얘기를 하면서 마취의 변천사를 말하는 식이다. 옆길로 새는 듯하지만 저자의 폭넓은 상식을 읽는 재미 또한 쏠쏠하다.

공성(攻城)과 수성(守城)전이 치열했던 삼국지에선 공격하는 쪽과 지키는 쪽의 기술 개발 경쟁도 치열했다. 지키는 쪽은 성벽을 높이 쌓는 것은 물론이고 성벽 주위에 해자를 만들어 이중으로 성을 방어했다. 해자는 넓고 깊게 만들수록 좋았고 바닥은 진흙 상태인 것이 가장 좋았다. 바닥에는 또 끝부분이 뾰족한 대나무나 쇠를 박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공격하는 쪽은 흙으로 산을 쌓아 성벽을 타고 넘거나 땅굴을 파는 식으로 공성전에 임했다.

제갈량이 남만의 왕 맹획을 일곱 번 사로잡은 뒤 풀어준 이른바 ‘칠종칠금(七縱七擒)’ 일화도 흥미로운 대목이다. 열대우림 지역인 남만을 공격하러 가는 동안 촉나라는 풍토병으로 많은 군사를 잃었다. 제갈량이 그런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남만을 공격한 이유를 저자는 당시의 전투기술에서 찾았다.

전투기술이 발달하면서 말을 탄 채 몸을 돌려 활을 쏘는 기마무사의 역할이 커지고 있었는데 이때 무사가 쓰는 활은 물소 뿔로 만든 흑각궁이 제격이었다. 저자는 “물소 뿔 확보가 관건이었고 물소는 열대에 사는 동물이었기 때문에 위나라와의 대전에 앞서 남만 정벌에 나섰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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