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라이프치히 탄생 200돌 축제
음악사상 멘델스존만큼 유복한 집안에서 자란 음악가도 없을 것이다. ‘행복’을 뜻하는 그의 이름 펠릭스(Felix)는 어쩌면 당연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유대인으로 당대 최고의 사상가였던 할아버지 모제스의 피를 이어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은 1816년 개신교로 개종해 가족의 앞길에 걸림돌을 제거했다. 멘델스존은 어릴 때부터 유럽 전역을 여행하며 각계각층의 인물과 교류했다. 10대에 그는 이미 세계를 바라보는 안목을 갖춘 코즈모폴리턴이었다. 그리고 불과 26세인 1835년 10월 4일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의 제5대 카펠마이스터로 취임하기에 이른다.
인류 최초의 직업 악단이자 궁정이 아닌 일반 소시민에 의해 자발적으로 만들어진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 이 오케스트라를 품고 있는 라이프치히는 12세기부터 황제와 교황청의 비호 아래 무역박람회를 열어 1710년 즈음 매년 1만 명 이상이 모여드는 상업 도시로 성장해 매력적인 별명인 ‘작은 파리’로 이름을 날렸다.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서 자신의 진가를 마음껏 발휘했다. 우선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를 유럽 최고의 악단으로 끌어올렸다. 라이프치히에서는 거의 성인 반열에 든 바흐를 재발견했고, 슈만의 교향곡 전곡을 초연했다. 사장될 뻔했던 슈베르트 최후의 교향곡의 악보를 슈만으로부터 건네받아 세상에 알린 이도 그였다.
어찌 멘델스존을 세상 물정 모르는 ‘부유층의 대변자’로 치부할 수 있으랴. 그는 오케스트라 단원의 봉급 인상을 위해 시와 투쟁했으며 작센 왕국의 수도 드레스덴을 찾아 아우구스트 2세를 설득해 라이프치히 음악원을 세우기도 했다. 멘델스존 기념관장 위르겐 에른스트는 “그는 ‘보통 사람’이었으며 모든 음악은 일반 민중의 삶에 깊이 뿌리 박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슈만은 멘델스존을 ‘19세기의 바흐’라고 불렀다. 리스트는 ‘바흐의 재탄생’이라고까지 칭찬했다.
그러나 그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상황은 달라졌다. 라이프치히 출신으로 그의 강력한 라이벌이던 바그너는 1850년 그의 논문 ‘음악에서의 유대주의’에서 최초로 멘델스존을 공격했다. 그는 멘델스존의 음악을 ‘복잡한 인공물’로 비하했으며 히틀러의 나치 정권은 멘델스존을 더욱 처참히 난도질했다. 1936년 11월 9일 밤 게반트하우스 앞 멘델스존의 동상이 파괴됐다. 끔찍한 만행의 절정이었다. 음악은 연주될 수 없었고 악보는 불살라졌다. 히틀러는 멘델스존의 음악에 대안이 되는 곡을 작곡하라고 지시할 정도였다.
그러나 정치는 결코 예술을 이길 수 없었다. 1991년 국제멘델스존협회가 발족했다.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17대 음악감독 쿠르트 마주어가 선배의 위업을 재현하고자 두 팔을 걷었다. 1997년 11월 4일 서거 150주년을 맞아 완벽하게 복구된 멘델스존의 집이 공개되기에 이르렀다. 도이체은행이라는 문화를 사랑하는 기업의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난해 10월 4일 필자는 라이프치히 골트슈미트 거리 12번지의 멘델스존 기념관을 찾았다. 멘델스존이 라이프치히에서 처음 연주회를 지휘했던 날이다. 오라토리오 ‘엘리아’를 작곡한 서재에 들어서니 장대한 합창이 온몸을 휘감는다. 라이프치히에서 2009년은 ‘멘델스존의 해’다. 올해 세계 음악페스티벌의 중심축은 라이프치히로 이동한다. 8월 21일부터 한 달 동안 게반트하우스를 중심으로 최고의 축제가 펼쳐진다. 이로 인한 경제적인 효과 또한 천문학적인 액수다.
통영 국제음악제 갈수록 퇴색
한국은 어떤가. 멘델스존의 경우처럼 한때 이념의 희생양이었던 대작곡가 윤이상의 고향 경남 통영에는 벌써부터 지어졌어야 했을 기념관과 축제극장이 아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통영국제음악제는 비전과 의욕이 초창기에 비해 오히려 퇴보하고 있다.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했던 기업도 슬그머니 뒤로 빠졌다. 음악가뿐 아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시인 윤동주의 기념관이 연세대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북간도 룽징의 묘지와 시비는 초라하기 그지없다. 제주 서귀포에 있는 화가 이중섭의 생가도 마찬가지다. 위대한 예술가의 자취를 보존하고 나아가 상품화하는 지혜는 없는 것인가. ‘개발’이라는 미명 아래 우리는 그동안 숱한 문화재와 자연을 잃었다. 문화예술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라이프치히 시민들이 부럽다.
유혁준 음악칼럼니스트 고양문화재단 공연기획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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