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맑고 곱다. 구김살 없는 어투와 까르르 웃는 웃음은 소녀가 아니라 아기 같다. 86세라니 믿기지 않는다. 원불교 창도자인 소태산 대종사가 26세 때인 1916년 진리를 깨우친 대각개교절(28일)을 맞아 울산 울주군 상북면 원불교 삼동배내청소년수련원(원장 장덕훈 교무)에 주석한 향타원(香陀圓) 박은국 종사(宗師)를 만났다. 1000여 명에 이르는 원불교 여성 성직자 중 가장 높은 종사의 법위를 갖고 있으며, 많은 성직자의 어머니나 다름없는 어른이다.》
“가시나무로 매 만들어 스스로 내리치며 수행
효심 엷어져가는 세상 이렇게 흘러가선 안돼”
간월산 자락에 자리 잡은 이곳은 골짜기의 형상이 배 모양과 비슷하고 배나무가 많다고 해 속칭 ‘배내골’이라 불린다. 향타원께서 20년에 걸쳐 오지를 사들이고 조경을 해 청소년수련원을 지었다. 풍수사상가 최창조 전 서울대 교수가 ‘봉황이 알을 찾아 깃드는 명당’이라고 했다는 곳이다. 큰절을 올리자 향타원께서는 더 깊은 절을 하며 맞아주었다.
―소태산께서 깨달은 진리의 핵심은….
―정신이 개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엇에든지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심지어 나를 미워하고 해를 끼친 이에게도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쉽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삼학(三學) 수행으로 ‘마음공부’를 해야 합니다.”
삼학은 사심이 없고 애욕과 탐욕에 끌리지 않는 ‘정신수양(精神修養)’, 천지 만물의 시종 본말과 인간의 생로병사 및 인과보응의 이치를 알아야 한다는 ‘사리연구(事理硏究)’, 모든 일을 오직 바르게 한다는 ‘작업취사(作業取捨)’를 말한다.
―소태산 대종사 생전에 직접 가르침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출가 2년째인 1927년 가을 성지인 전남 영광 영산에 오신 대종사를 처음 뵈었습니다. 지금도 그때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청소를 하는데 대종사와 2대 종법사인 정산 종사께서 대화를 하고 계셨습니다. 그 사이로 비질을 하는데 대종사께서 ‘이 아이가 누구냐’고 하셨고, 종사께서 ‘부모가 교도가 아닌데도 혼자 출가해 서원을 했습니다’고 소개했습니다. 대종사께서 제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네 조상이 명당을 썼는가 보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뒤로 공부를 더 하러 일본에 갈 생각이었는데 대종사께서 ‘앞으로 우리나라가 세계의 중심이 될 텐데 왜 일본에 가느냐’고 말리셨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습니다.”
―일제강점기 민족종교의 법통을 이어가기 힘들었을 텐데요.
“대종사와 종사께서 일제의 눈을 피해 지혜롭게 포교를 이어나가셨지요. 두 분이 인촌 김성수 선생에 관한 얘기를 나누시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큰일을 많이 하신다’고 감탄하시곤 했습니다.”
―여성 성직자로서 남다른 용맹정진을 하신 것으로 후진들이 존경합니다.
“가시나무로 매를 만들어 게으름이 나면 스스로에게 매를 쳤고, 4년간 폐결핵을 앓으면서도 수행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나보다 공부가 더 된 후배들을 볼 때면 바닷가에 가서 ‘내 시기심이 다 떠내려가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를 드릴 정도였지요. 오직 어떻게 하면 공부길을 잡을까 하는 마음뿐이었습니다.”
―여러 명문가의 ‘정신적 스승’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명문가 사모님과 딸 며느리들이 찾아오곤 했지요. 돈이 많으면 행복한 줄 알지만 그분들도 다 애환이 있는 것 같아요. 과거에 공덕이 있다고 현재가 항상 행복하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주곤 합니다.”
―감사하는 마음의 근본이라고 할 효(孝) 사상이 엷어진 것 같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요즘 유행가 가사를 보면 남녀 사랑만 있지, 부모나 스승에 대한 사모의 정이 없습니다. 얼마 전 ‘해가 없어도 살고, 달이 없어도 살지만, 당신 없인 못 산다’는 가사를 들으면서 맘이 무척 불편했습니다. 세상이 이렇게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산중에서 유행가를 들으시는 것을 보니 세상 소식에도 큰 관심이 있으신 것 같습니다. 요즘 제일 안타까운 일은.
“공직자들이 위아래를 가리지 않고 부정을 저질렀다는 뉴스, 학부모가 교사를 폭행했다는 얘기, 부녀자를 폭행해 살해했다는 흉악범에 관한 소식 등입니다.”
―그럼 가장 기쁜 소식은….
“김연아 선수 얘기죠. 얼굴도 예쁘고 기술도 좋아요. 그 아이만 나오면 정신을 잃고 TV를 봅니다. 지금까지는 잘해 왔는데 앞으로도 올바르게 커갔으면 좋겠어요. 우리 모두의 책임이라고 생각해요.”
―어떻게 그렇게 피부가 고우십니까.
“참선을 많이 해서 그렇지요. 밤에 어성초를 약간 바르기는 하지만.(웃음)”
―70년가량을 수도자로 일관해 오셨습니다. 행복하셨습니까.
“아, 그렇고말고요. 세상에 이렇게 행복한 인생이 어디 있습니까. 다시 태어나도 이렇게 살 겁니다.”
울산=오명철 전문기자 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