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는 반개(半開)했을 때, 벚꽃은 만개(滿開)했을 때, 복사꽃은 멀리서 봤을 때, 배꽃은 가까이서 봤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인간사도 서로 멀리 두고 그리워하거나, 회포를 풀어야 할 때가 아름답게 보일 때가 있습니다. 누가 심고 가꾸지 않아도 자연의 섭리에 따라 꽃을 피우는 식물에서 지혜를 배워야 합니다.”
법정 스님(77·사진)이 19일 오전 서울 성북구 성북동 길상사 극락전에서 신도 1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봄 정기 법회를 열었다.
스님은 법문을 시작하면서 목소리가 잠기자 “변성기가 다시 찾아왔는지 목소리가 변했는데 다시 철이 드나 보다”면서 “오늘처럼 눈부신 날에 다시 만나 반갑다. 언젠가는 이 자리를 비울 텐데 그래서인지 더 고맙고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이날 스님은 무르익은 봄기운을 떠올리며 꽃과 계절 등 자연의 섭리를 인용한 법문을 전했다. 스님은 “아름다운 계절에 여러분이 어떤 꽃을 피울지 생각해 달라”며 “부처님 말씀대로 자신과 법에 의지하고, 법을 등불로 삼아 진정성을 찾아야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스님은 또 “길상사가 내건 ‘맑고 향기롭게’라는 말에 따라 스님들과 불자들이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지 의심이 든다”며 “‘맑고’는 진실성을, ‘향기롭게’는 사회적 영향력을 뜻함인데 이렇게 하지 않고 타성에 젖어 신앙생활을 한다면 안 하는 것만 못하다”고 지적했다. 매년 봄과 가을 길상사에서 공개 법회를 여는 스님은 “무엇보다 남을 믿을 게 아니라 자신과 불법(佛法)에 의지해 씨앗을 뿌리고 꽃을 피워야 한다”며 20여 분의 법문을 마무리했다.
김갑식 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