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은 한 언어 또는 다른 어떠한 기호체계를 또 다른 언어나 기호체계와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A’라는 기호체계에 따라 작성된 ‘a’라는 텍스트로부터 ‘B’라는 기호체계에 따라 작성된 ‘b’라는 텍스트로 이동시키는 것을 의미한다.”(번역학의 ‘기호학적 연구 방법’에 대한 움베르토 에코의 해석)
최근 번역학 백과사전이 국내에 처음으로 나왔다. 1998년 영국 라우트리지 출판사가 펴낸 ‘번역학 백과사전’을 한국번역학회가 한글로 옮긴 ‘라우트리지 번역학 백과사전’(한신문화사)이 그것. 움베르토 에코 이탈리아 볼로냐대 교수를 비롯해 세계적인 학자 94명이 참여해 만든 번역을 위한 백과사전이다.
책에는 ‘성경 번역’ ‘셰익스피어 번역’ ‘번역 교육’ ‘번역의 역사’ ‘시 번역’ 등 번역 관련 표제어 81개에 대해 해석과 설명을 담았다. 세계적인 성경 연구가 유진 나이다 씨는 ‘성경 번역’이란 표제어와 관련해 세계 인구의 97%가 사용하는 2009종의 공식 언어와 방언으로 번역됐다는 통계자료부터 성경 번역의 역사, 원칙과 과정, 사회언어학적 쟁점 등을 8쪽 분량에 정리했다. 문학 번역의 기준으로 여겨지는 ‘셰익스피어 번역’에 대해서는 셰익스피어 전문가인 벨기에 나무르대 디르크 델라바스티타 교수(영문학)가 7쪽 분량의 글을 썼다.
이 백과사전은 미국과 영국 등 31개국의 번역 역사와 현황도 담고 있다. 2세기 중반경 처음으로 불교경전의 번역이 이뤄진 중국(15쪽 분량)과 17세기 초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중국과의 무역을 장려하면서 중국어 번역이 활발해진 일본(14쪽 분량)의 사례도 담았다. 일본 사례에서는 “자체 문자가 없었던 일본에 한국을 통해 3, 4세기경 중국 문자가 소개되었고 이것이 6, 7세기까지 엘리트들 사이에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대목이 있다.
929쪽 분량의 번역 작업을 총괄한 김지원 세종대 교수(영문학)는 “번역의 참고서 격인 백과사전 출간을 계기로 체계적인 번역과 번역의 이론화 작업에 속도가 붙길 기대한다”고 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