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에 온기를… 재일작가 최석호 설치작품전

  • 입력 2009년 4월 21일 02시 45분


전시장 바깥까지 나무 향기가 스며 나온다. 안으로 들어서니 참나무 소나무 등 나무장작을 천장까지 차곡차곡 쌓아올린 원형 설치작업이 눈에 들어온다. 불쏘시개의 운명에 처했던 장작들이 마지막 힘을 합쳐 우람한 나무로 다시 태어난 것 같다. 바로 옆에는 겨울 지나 베어낸 복숭아 나뭇가지를 꽃처럼 동그랗게 쌓아놓았다. 얼핏 보기엔 별 기교 없이 쓸모없는 나무를 쌓기만 한 것 같은데 묘한 울림이 전해온다. 자연을 담는, 그리고 자연으로 자연을 말하는 작가의 감각이 남다르기 때문이다.

30일까지 서울 서초구 서초동 스페이스 함(렉서스 빌딩 3층)에서 열리는 재일작가 최석호(54) 전이다. 그가 15년 만에 한국에서 처음 갖는 개인전으로 설치 작업과 함께 황소의 뿔을 닮은 나무 조각과 나뭇가지에 걸린 달 같은 추상적 오브제도 내놓았다.

경기 여주군 태생으로 중앙대 회화과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최 씨는 뒤늦게 나무 만지는 일에 빠져들었다. 제대 직후 가지 잘린 가로수를 보고 군대에서 목숨을 잃은 전우를 떠올린 작가. 1990년대 초반까지 잘린 나뭇가지나 헐린 건물의 목재를 사용한 작품을 발표한다. 이런 작업이 일본에서 주목받으면서 1994년 일본으로 건너가 조각을 공부한다. 한국에서 시도하지 못했던 큰 재목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내놓아 오사카트리엔날레 동상과 오사카도시환경 모뉴먼트 대상 등도 수상했다.

이번 전시는 그가 일본에서 보냈던 세월의 결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자리다. 여주의 고향집 부근에서 가져온 나무들로 일상의 시골풍경에서 느낀 감흥을 표현했다는 것이 작가의 말. 작품에선 나무가 가진 정서적 치유의 힘과 함께 인간의 횡포로 파괴되는 나무의 아픔도 느껴진다.

사람들이 하찮게 취급하는 존재에 소중한 의미를 부여한 작가. 그 덕분에 버려진 나무들은 새 생명으로 태어나 우리에게 자연과 조화된 삶의 가치를 일깨운다. 02-3475-9126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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