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나 이념단체 중심으로 남북 교류가 이뤄져선 그 자체가 이권화되고 타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의 남북관계 경색도 지난 정권에서 버릇을 잘못 들인 게 많죠. 문학인으로서 북한 독재체제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야 합니다.”
분단 문제를 평생의 문학적 주제로 삼고 천착해온 원로 소설가 이호철 씨(77·사진)가 남북 정부 수립과 분단에 이르는 근현대사를 재구성한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을 펴냈다. ‘남녘사람 북녘사람’ 이후 7년 만에 발표한 신작 장편소설이다.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는 “이번 작품은 소설 형식을 빌려 현 시점에서 내가 생각하는 남북관계를 총괄하려고 작정하고 썼다”며 “기존의 근현대사 교재가 한쪽에 편향적이었다면, 좌우에 치우치지 않고 실체적으로 남북문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작가는 6·25전쟁 때 가족과 헤어져 홀로 월남했다. 그는 1955년 단편소설 ‘탈향’으로 등단한 뒤 50여 년 동안 ‘판문점’ ‘서울은 만원이다’ 등 분단문제를 다룬 작품들을 써왔다. 작가는 “내 문학적 주제는 ‘탈향’(분단)에서 ‘귀향’(통일)으로 옮아가고 있다. 작가로서 통일을 위한 목소리를 소신껏 낼 생각이고 이 작품도 그런 각오로 완성했다”고 말했다.
이 작품은 이승만 윤치영 김구 조만식 등 역사 속의 다양한 인물들이 한국 근현대사의 격동기를 회상하고 그들이 현재의 남북관계나 정치 상황에 대한 의견을 털어놓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작가는 등장인물들의 입을 빌려 항일 무장투쟁 지도자로서의 김일성을 평가하거나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분석해 현실적이고 유연한 판단력을 가진 인물로 재조명한다. 통일을 위해서는 민간 차원의 교류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이른바 ‘한살림 통일론’이란 신념은 이번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권력이 평상 수준으로 내려오면서 일반의 자유는 양껏 올라오게 됩니다. 일반인들도 마음껏 활기차게 자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나라가 돼야 하고 그건 북한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는 “크게 보면 남북관계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면서도 “‘통일’이란 말은 정치적 ‘때’가 묻어 싫어한다. 형편만큼 같이 한솥밥을 먹는 사람들이 늘어나면 물이 차오르는 것처럼 남북이 자연스럽게 한살림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작품 마지막에 수록한 ‘별들 너머 저쪽과 이쪽’ 장에서는 전쟁 중 겪은 전투현장과 포로생활, 피란민과 이산가족으로서의 삶 등 자전적 경험이 녹아 있어 분단이란 역사의 질곡을 함께 체감할 수 있다.
그는 “나는 남북이 한 나라였을 때를 겪어봤기 때문에 분단의 비극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상황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한다”며 “제대로 된 근현대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 것이나 젊은 세대들이 통일의 당위성에 무감각한 것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 책이 단지 소설로서가 아니라 당대를 직접 체험한 사람이 기술한 근현대 참고서로서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그는 한국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 분단은 언제든 반드시 해결해야 할 문제며 작가로서 이 문제를 외면하고 작품 활동을 할 수 없다는 점도 강조했다.
“남북문제가 있는 한, 나는 계속 글을 쓸 겁니다. 통일에 문학이 기여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을 역량 있는 젊은 작가들도 기억해 줬으면 합니다.”
차기작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양면을 되짚어보는 단편소설과 1950년대 이북 피란민을 다룬 작품을 올해 발표할 예정이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