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광티엔 인터뷰

  • 입력 2009년 4월 22일 18시 05분


24~26일 서울 대학로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하는 '위기의 햄릿'은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이야기하면서 실상은 중국의 현실을 매섭게 풍자한 독특한 연극이다. 중세 덴마크 왕실에서 벌어진 비극을 연기하는 배우들은 정작 중국 인민복을 입고 있다.

형인 선왕을 독살하고 왕위와 형수를 함께 찬탈하는 클로디어스(황성현)는 "선왕인 형은 민중을 데리고 천지와 전투하다시피 했는데, 그 자신은 흡사 상제와 같았다"면서 "선왕에 대해 7할은 업적으로 하고 3할은 과오로 삼는다"고 말한다. 혁명엔 성공했지만 과도한 정치사업으로 중국인민을 도탄으로 몰아넣었던 마오쩌둥(毛澤東)에 대한 중국지도부의 평가를 빼닮았다. 클로디어스는 "현재의 덴마크 인민은 영혼운동을 겪으며 정치생활로 피곤한 탓에 안정이 필요하니 이제부터 우리 업무의 중점은 국가 경제건설"이라고도 말한다. 덩샤오핑(鄧小平) 이후 현 중국지도부의 노선과 일치하는 발언이다.

그렇다면 억울한 죽음을 당한 선왕의 복수를 꿈꾸는 햄릿(김균)은 정의의 편일까. 선왕이 죽자마자 동생인 클로디어스와 결혼한 햄릿의 어미인 거트루트(백지원)는 장막 뒤에 숨은 신하 폴로니우스를 칼로 찔러 죽인 햄릿을 "무능하고 허위적인 도덕군자"라고 꾸짖는다. 그는 "숙부의 모든 것에 반대한다면 군대를 일으켜 정치를 바꾸던지 결투를 할 일이지 미친 척 바보처럼 굴다가 쥐새끼나 찌르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아들의 비겁함을 꼬집는다. 햄릿을 사랑한 오필리어(이지영)의 비판은 더 매섭다. 그는 자신의 무덤에서 때늦은 사랑을 고백하는 햄릿을 향해 "사랑의 맹세를 정치투쟁의 대가로 저당잡혔다"며 "그런 말로 선거유권자를 속일 순 있어도 난 못 속인다"고 쏘아붙인다. 결국 햄릿은 비인간적 자본주의화를 비판하는 구호만 요란할 뿐 구체적 대안은 없는 중국의 신좌파의 표상인 셈이다.

이토록 얼얼하게 중국현실을 비판한 이 연극의 극본과 연출을 맡은 이는 바로 아시아연극연출가워크숍에 초청된 중국의 괴짜 연출가 장광티엔(張廣天·43) 씨. 상하이(上海)중의대를 다니다 중퇴하고 작곡가, 가수, 시인, 연극연출가로 문화게릴라 활동을 펴온 그는 2000년 작 '체구에바라'와 2004년 작 '성인 공자'로 명성을 얻었다. 전자는 쿠바혁명의 영웅 체 게바라를 등장시켜 중국의 빈부격차 문제를 비판했고 후자는 문화혁명기엔 린바오(林彪)와 공자를 싸잡아 비판하던 비림비공(批林批孔)운동을 펼치다 이제는 다시 시류에 휩쓸려 공자를 우상시하는 중국인들의 집단주의를 비판했다. 두 작품은 중국당국에 의해 공연금지 처분을 받았다.

20일 오후 서울 대학로 공연연습장에서 만난 그는 "체구에바라는 그래도 100여 차례 공연이 된 뒤 금지처분을 받았지만 성인공자는 베이징에서 2회 공연 만에 금지처분을 받았다"며 "2005년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유럽연극제에서 '성인 공자'를 초청하니까 해외공연은 허용했지만 여전히 국내공연은 금지 중"이라고 설명했다.

연습 내내 손에서 담배를 놓지 않을 만큼 골초인 그는 "중국의 문제는 사상이라는 이름의 집단주의에 빠져 독립되고 자유로운 개인을 억압하는 것"이라며 "그런 점에서 나는 어떤 주의에도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념이 개개인의 삶을 파괴하는 것에 대한 그의 비판의식은 이번 작품에도 여실히 드러난다. 대본을 보면 햄릿의 주요등장인물을 이념화한 클로디어스주의(돈과 물질), 거트루트주의(성욕과 생명), 폴로니어스주의(기회주의적 처세술) 등이 장의 제목으로 등장한다. 중국이 자본주의화하면서 발생한 부작용을 이념화해 비판한 것이다.

그는 "한국배우들이 무거움 짐을 싣는 것을 도와달라는 노동자를 순순히 돕는 것을 보고 카메라로 찍어서 중국인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중국에선 아무런 대가없이 남을 도우는 일은 찾아보기 어렵다. 더구나 예술가가 노동자의 짐을 들어준다는 것은 생각도 하기 힘들다. 진짜 자본주의를 보고 싶으면 베이징(北京)으로 오라."

'위기의 햄릿'의 주인공은 차라리 오필리어다. 수많은 연극에서 순수한 사랑의 화신으로 그려진 오필리어가 이 작품에선 과격하기 그지없다. 그녀는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로 시작하는 유명대사를 읊는 햄릿의 입에 독약과 물을 쳐 넣으며 냉소적으로 외친다. "(세상을) 무너뜨릴 용기도 없으면서, 생존을 견뎌내지 못하면서 뭘 하시겠어요? 그저 불평만 터뜨리고, 타인의 과오에 분노하시게요?"

장 씨는 "셰익스피어 당대에는 햄릿을 희망으로 봤을지 몰라도 제가 볼 때 햄릿은 죽은 시체에 불과하다"며 "시류에 편승하지도 않고 명분에 묶이지도 않은 채 자신의 진실한 사랑에 충실한 오필리어야말로 위기에 빠진 중국과 세계를 구원할 수 있는 존재"라고 말했다. 함께 방한한 딸 우웨이(武緯·21) 씨가 극중 애절한 사랑노래의 작곡과 기타반주를 맡았다.

권재현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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