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스커트는 먹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조금 쓸쓸해진다.
평소 알고 지내던 여자에게서 헤어진 여자 친구의 동네 얘기를 들었다. 그때 우리는 작은 모임을 마치고 근처 술집으로 이동하던 중이었다. 꽤 친하다고 여겼었는데 생각해 보니 우리는 일 년에 한 번꼴로 만나는 사이였다. 밤길이었고 지나다니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우리는 조용히 걸었다. 자동차 밑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그림자를 끌고 나와 반대쪽 자동차 밑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 자동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며 걸었다.
우리는 다섯 명이었는데 각자의 보폭에 따라 두 명과 세 명으로 나눠지기도 하고 두 명과 두 명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 나머지 한 명은 꼭 내가 되었다. 그 친구를 다시 한 번 힐끗 쳐다보며 걷던 길을 마저 걸었다. 그 친구는 그녀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 말풍선 하나가 생겼다.
“그래서 어쨌다는 것이 아니라 그게 전부이고, 결국 아무것도 아니라고.”
나는 말풍선을 터뜨리며 혼잣말을 했다. 그 친구가 뒤를 돌아봤다. 나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보폭을 좀 더 넓혔다. 우리는 곧 다섯 명이 되어 술집으로 들어갔다.
나는 들어가기 전 술집 앞에 작은 말풍선 하나를 달아 놓았다.
한때 그녀를 집까지 바래다주고 돌아오던 길에는 누추한 담벼락이 있었다. 담벼락 앞에는 검은 봉지에 묶인 쓰레기가 놓이기도 하고, 주인과 산책을 하던 개의 똥이 있기도 했다. 다리가 부러진 의자와 잡동사니들. 토사물. 사람들은 담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걸어 다녔다.
회색빛 담벼락 앞에는 덤불이 있었다. 겨울이 지나자 그 덤불 속에서 꽃이 피었다. 노란 미니스커트처럼 작은 꽃들이 반상회라도 하듯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그 앞에서 나는 걸음을 멈추고 고양이처럼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묶었다. 꽃들은 내 머리 위에서 흔들렸다. 나는 꽃들의 나이를 묻지 않고, 이름을 묻지 않았다. 그 덤불을 마주 보고 서서 고개를 들어 올리는 손바닥처럼 꽃을 향해 손을 내밀어본다.
나는 꽃을 딴다. 엄지와 검지로 줄기를 돌려본다. 꽃이 돈다.
아, 하고 입이 벌어진다.
벌어진 입을 꽃으로 막았다. 그리고 입술을 닫았다.
미니스커트는 먹을 수 없다. 그렇게 말하고 나면 입안에서 꽃이 돈다. 나는 조금 쓸쓸하지만, 쓸쓸함이 마저 돌고 나면, 입안이 환해진다.
이동욱 2009 동아일보 신춘문예 단편소설 부문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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