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 알리는 한국식 자연주의 살림법
이 씨의 집 겸 가게는 '살림을 예술로 승화시킨' 갤러리 같았다. 패랭이꽃과 도라지꽃을 수놓은 정갈한 행주, 지하철 안에서 코바늘로 떴다는 컵 받침…. 그는 마당에서 보라색 제비꽃을 따 생수를 담은 유리컵 안에 띄워 건넸다. 찹쌀 반죽 위에 제비꽃잎을 얹어 부쳐내니 아름다운 간식이다. 그의 생활엔 유머도 깃들여 있다. 검은색 보자기 네 귀퉁이를 묶으면 장바구니도 되고, 두건도 된다. 잘라낸 페트병은 잡곡 용기로, 주황색 양파 망은 소지품 가방으로 쓴다. 각 백화점 VIP고객들, 외교 사절들과 외국인들이 이 곳을 찾아와 배우는 친환경 자연주의 살림법이다.
피아니스트 임동창 씨의 아내인 그는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엄마네 한복'을 운영하던 어머니를 이어 한복을 만들어왔다. 2000년대 들어 서울 종로구 삼청동으로 옮겨 '효재'란 상호를 쓰면서 유명해졌다. 특히 혼수를 싸던 보자기를 댕기머리처럼 땋은 와인 포장법이 인기였다. "외국에 갈 때 보자기 한 장 챙겨 넣어 뭐든 싸 선물하세요. 한국의 아름다움을 쉽고 소박하게 전할 수 있어요."
●"세종문화회관을 보자기로 쌀 계획"
CJ홈쇼핑과 이 씨의 만남은 2000년대 초반부터 '효재'를 유심히 지켜봐 온 이해선 CJ홈쇼핑 대표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당시 태평양의 마케팅 임원이던 이 대표는 이 씨를 포함해 한국적인 것을 현대적으로 해석하는 예술인들을 모아 비공식 모임을 만들었다. 그는 올해 2월 CJ홈쇼핑 대표가 되자마자 '한국 명품' 쇼핑 기획을 추진했다. '효재' 침구는 이 기획의 첫 회다. "편안한 이불 덮고 푹 자는 게 친환경 삶의 출발"이란 뜻에서다. 이 씨는 "이 대표를 통해 경영인이 장기적으로 사람을 관리하는 법을 배웠다"며 "한국 문화를 팔고 해외로 수출도 하자는 그의 제안을 감사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이 씨는 7월에는 '광화문 광장 재조성 오픈 문화 축제'의 한 프로그램으로 세종문화회관 본관을 보자기 수 만 장으로 감싸게 된다. 곧 한국 문화에 대한 책을 낼 배우 배용준의 자문 역할로 함께 전국 답사도 다니고 있다. "전 이제껏 살아온 대로 밭일과 집안 살림을 할 뿐인데, 요즘 들어 사람들이 '세계적 자연주의 트렌드'라고 치켜세우네요. 앞으로 어린이 과자와 아파트 인테리어 분야도 한국적으로 꾸며보고 싶어요."
김선미기자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