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질서 ‘외교력 생존’ 한계 보여줘”
조선은 16, 17세기 세 차례에 걸쳐 큰 전란(戰亂)을 겪었다.
일본과 치른 임진왜란(1592∼1598년), 후금과의 정묘호란(1627년), 청과의 병자호란(1636년)이다. 이 가운데 양대 호란을 정면으로 다룬 연구는 많지 않다고 한명기 명지대 사학과 교수는 말한다. “자랑스러운 역사가 아닌 데다 호란을 다루다 보면 중국을 띄워주는 결과가 되므로 피하는 경향이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런 풍토 속에서 꾸준히 호란을 연구해 온 한 교수가 호란을 중심으로 당시의 동아시아 정세를 다룬 연구서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푸른역사)를 펴냈다. 조선왕조실록, 청나라실록 등을 비교 연구한 결과물이다. 호란을 주제로 했지만 조청관계뿐 아니라 명 청 교체기 중국 대륙의 혼란상과 조일관계까지 살피면서 동아시아의 국제질서를 전체적으로 조망했다.
한 교수는 “호란은 단순한 조선과 청나라 사이의 전쟁이 아니라 당시 격변하던 동아시아 질서에서 파생한 전쟁이며 향후 질서에도 큰 영향을 미친 사건”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호란 전후 조일관계에 대해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대한 적개심이 높았지만 호란이 벌어지면서 남북의 적을 동시에 상대하는 게 부담스러워진 조선은 일본에 대한 적개심을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일본은 그 틈을 노려 조선에 무기를 지원하는 등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면서 조선에 접근했다.
한 교수는 “호란은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 아래 양자 사이에 끼어서 생존하는 게 얼마나 피곤하고 힘든지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호란은 현대에도 좋은 메시지를 던진다. “호란에서의 사례에서 보듯 국가의 역량이 어느 수준으로 뒷받침되지 않으면 외교력만으로 생존하는 데는 한계가 있습니다. 중국과 일본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오늘날의 한국이 생각해볼 만한 대목입니다.” 한 교수는 30년간 청나라에 포로로 잡혀 있다 탈출한 안추원과 안단의 사례, 청에 투항한 명나라 출신인 이신(貳臣)들이 청군의 일원으로 조선 침략에 앞장섰던 사실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금동근 기자 go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