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배우들의 키스, 정말로 하는 걸까요?
(김세진·26·서울 강남구 신사동)
A: 요즘 시늉만 하면 욕먹어… 연기 몰입 ‘딥키스’하기도
로맨틱 뮤지컬에서 키스 장면은 자주 넣자니 민망하고 빼면 섭섭한 장면 중 하나입니다. 영화 속 배우들이 턱이 쩍 벌어질 만큼 생생한 키스를 선보이는 것과 달리 무대에서는 그럴듯한 분위기만 냈던 게 사실입니다. 몸을 돌려 남자의 머리로 여배우 얼굴을 가리는 수준이었죠. 배우들 사이에 ‘엄지 키스’로 불리는 게 있습니다. 상대 입술 위에 엄지손가락을 대고 나머지 손가락으로 상대 얼굴을 보듬으며 자신의 엄지손톱에 키스를 하는 거죠.
하지만 요즘 무대 위에서는 키스하는 시늉만 하면 날카로운 관객에게 욕먹기 십상입니다. 그런 관객을 의식해 배우들도 키스에 거리낌이 없는 편이죠. 입술을 포개는 것을 물론이고 상대방의 입에 혀를 넣는 ‘딥(Deep)키스’의 상황도 잦아졌습니다. 다만 입속에서 벌어지는 상황은 여러 조건에 의해 좌우됩니다. 뮤지컬 ‘아이러브 유’ 연출자 한진섭 씨는 “대본의 지문에는 ‘짧게 키스, 다음 키스는 좀 길게’라는 식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며 “이 지문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연출가가 아닌 배우 몫”이라고 말했습니다.
‘설왕설래(舌往舌來)’ 여부도 배우 사이에서 정하게 되는데 그날의 분위기가 받쳐 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현재 뮤지컬 ‘온에어’에서 김순정 PD 역을 맡은 조민아 씨는 “무대 위에서 상대 남자는 배우가 아닌 캐릭터로밖에 안 보인다”며 “입을 맞춘 뒤 암전이 되는 장면이지만 바로 입술을 뗄 수 없다. 극의 역할에 취해 정말 사랑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남자 배우는 감정에 충실한 나머지 약속과 달리 여배우의 입속에 혀를 집어넣어 분위기를 묘하게 했다죠.
연습할 때도 키스 장면은 실전처럼 하는 편입니다. 뮤지컬 ‘싱글즈’는 두 남녀 배우가 무대 뒤편에서 키스 연습을 하다가 막상 무대 위로 나갈 타이밍을 놓친 적도 있었다고요. 키스도 다른 연기와 마찬가지로 연습을 통해 훈련하지 않으면 무대 위에서 실수가 잦은 연기인 셈입니다.
그럼 동성 배우 간의 키스는 어떨까요. 뮤지컬 ‘렌트’의 엔젤, ‘자나, 돈트’의 자나 역 등을 통해 같은 남성끼리 키스 기회가 잦았던 배우 김호영 씨는 “동성 간 키스는 이성보다 더 거리낌이 없고 치열하다”고 말합니다. “관객 처지에서 동성끼리는 트릭을 쓰거나 대충할 거라는 편견이 있는데 이걸 깨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한다”고 합니다.
배우들은 짧은 키스 장면을 위해 많은 준비를 합니다. 뮤지컬 ‘김종욱 찾기’에 출연 중인 배우 오나라 씨는 극중 5초간의 키스 장면을 위해 공연 전 냄새나는 음식 안 먹기, 양치질 두 번 하기, 필름으로 된 구강청정제 복용, 물 많이 마시기 등을 거친다고 합니다. 이렇게 만반의 준비를 해도 실수는 나오기 마련입니다. 오 씨는 “너무 과격하게 키스를 하느라 이빨이 부딪쳐서 고통스럽게 키스를 한 적도 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염희진 기자salth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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