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등단작 ‘여름의 흐름’으로 당시 최연소로 일본 최고권위의 문학상 아쿠타가와상을 받은 작가. 하지만 그 뒤 일체의 문학상과 문단 교류를 거부하고 40여 년간 창작에만 전념한 은둔 작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64·사진)의 이력은 독특하다. 문학적 타협을 거부하는 작가정신과 매일 삭발하며 각오를 다지는 기벽으로도 잘 알려졌다. ‘납장미’ ‘밤의 기별’ 등 다수의 작품이 국내에 번역돼 나왔다.
최근 그가 처음 쓴 역사소설 ‘해와 달과 칼’(학고재)이 출간됐다. 일본 무로마치시대(14∼16세기) 한평생 ‘일월산수도병풍’을 완성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쏟아 부은 한 노인의 파란만장한 삶을 풀어낸 작품이다. 끊임없이 문체를 실험해온 작가답게 한 문장이 한 페이지 가까이 되는 현란한 만연체와 리듬감 있는 단문을 자유자재로 구사한다. 문체와 문장 배치 자체가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일본 북부 산악지역인 오마치에서 집필에만 몰두하고 있는 그를 e메일로 인터뷰했다.
―16세기 말 작자 미상의 그림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이 작품을 굳이 장편 역사소설로 구상하게 된 까닭은 무엇인가.
“지금까지 역사소설은 스토리의 재미, 역사관에 따른 상상력 정도에 그쳤다. 간단히 말해 오락성의 추구에서 한 발도 나아가지 못한 탓에 수준 높은 문학에 이르지 못했다. 작자 불명의 병풍 그림과 가장 자유롭고 활기가 넘쳤다는 시대배경을 최대한 이용해서 이러저러한 제약에 좌우되지 않고 마음껏 고도의 이야기를 구축하고 싶었다.”
―내용 면에서는 역사소설이지만 문체와 문장 전개는 전위적이다. 미학적인 문체가 서사의 또 다른 축을 차지하는 것 같다. 유장함과 함께 낯섦, 난해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문학이 언어를 구사하는 예술이라는 것을 파고든 결과가 이 문체와 문장이다. 다수 독자를 얻으려는 산문은 결국 쉽게 흘러가버려 스토리를 설명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다. 언어가 지닌 혼의 영역에 도달해보고 싶었다. 이를 위해 읽기 쉬운 문장을 기대하는 독자들을 배반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 작품은 구상한 이야기에 맞는 문체와 표현력을 기르기 위해 20년간 묵혀뒀다고 들었다. 이 작품을 쓰기 전과 후를 비교한다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소설가와 문체는 표리일체다. 40여 년간 써온 결과 마침내 내 개성이 문체에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만이 가진 특별한 의미는 없다. 똑같은 소설은 쓰지 않겠다는 기본은 조금도 변함없다. 올해 6월에 발표하는 소설은 주제가 전혀 다른 단편을 108편 이어놓은 것이다.”
―아직도 더 다듬을 시간이 필요해 구상만 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가.
“많다. 백 살까지 쓴다고 해도 다 쓰지 못할 정도다. 그 미답의 봉우리 중에는 등산길의 입구조차 아직 찾아내지 못한 것도 있어 숲에 다가가는 것도 불가능한 형편이다. 우선 오를 수 있는 산부터 등반해보려 한다. 그것을 반복해가는 동안 고봉의 정상에 설 수 있게 될지도 모르겠다.”
―은둔 작가로 알려졌다. 산악지역에서 금욕적인 삶을 산다고 들었는데, 근황이 궁금하다.
“금욕적이라거나 은둔이라는 표현은 정확하지 않다. 다른 장르의 예술이나 학문, 스포츠에서 획기적인 작품이나 기록을 만들어 내려는 사람과 똑같이 나도 철저한 소설가가 되고 싶을 따름이다.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는 것은 여기에 방해된다. 방해가 되는 조건을 모두 배제한 것이 이런 생활이다. 집필 이외에는 정원 가꾸기에 열중하고 있다. 소설과 정원 일, 이 두 가지뿐이다. 최근 수년 동안은 하루도 집필을 쉬지 않았다. 하루 정도 쉰다고 글이 나빠진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좋은 결과를 내기 위해서는 그 하루가 중요하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