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가-예수 탄신일마다
서로 축하현수막 걸어
“부처님 오심은 온누리 기쁨입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하루 앞둔 1일 서울 강북구 수유동 한신대 신학대학원 정문에 특별한 현수막이 등장했다. 신학대학원과 울타리 하나를 사이로 이웃하고 있는 화계사 앞에 걸려야 할 현수막이 잘못 걸린 게 아닐까 싶지만 현수막 아래에 ‘신학대학원 학생회’란 글자가 또렷하다. 한신대 신학대학원 학생회는 올해로 13년째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걸고 있다. 목회자를 양성하는 신학대학원과 500년 전통의 고찰도 한때는 껄끄러운 이웃이었지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과 정성이 물과 기름 같았던 관계를 돈독한 이웃으로 변모시켰다.
양측의 인연은 화계사에 불이 난 199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에는 일부 기독교 신자들에 의한 ‘훼불(毁佛)사건’이 빈번하게 일어나던 때여서 화계사 화재도 기독교 신자들의 소행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국내 기독교계와 불교계의 갈등은 위험수위로 치달았다. 화계사에서 수련하던 외국인 승려들은 “한국 종교계는 절망적”이라며 귀국을 서두를 정도였다.
그때 아주 특별한 손님들이 화계사를 찾았다. 한신대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대화’라는 수업을 진행하던 김경재 명예교수(69)와 20여 명의 수강생들이었다. 김 교수는 화재 현장을 정리하는 데 작은 힘이나마 보태고자 수업을 쪼개 시간을 냈다. 큰돈은 아니지만 학생들과 복구 지원금도 모았다. 김 교수는 “옆집에서 불이 났는데 이웃으로서 도와주는 게 당연하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 일은 화계사 승려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외국인 승려들은 “아직 한국 종교계에 희망이 있다”며 귀국하려고 싸놓았던 짐을 풀었다. 승려들은 김 교수와 제자들의 성의에 보답하기 위해 그해 성탄절 화계사 입구에 “화계사에서 예수님 탄생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현수막을 걸었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일이었다. 다음 해인 1997년 봄, 한신대 학생들은 부처님 오신 날을 경축하는 현수막을 내걸어 화답했다.
이렇게 시작된 ‘현수막 릴레이’로 한신대와 화계사는 종교의 벽을 넘어 돈독한 이웃이 됐다. 부처님 오신 날이면 한신대가 불교신자들에게 주차공간을 제공하고, 승가대 학생들과 한신대 학생들이 함께 한신대 운동장에서 축구를 한다. 매년 10월에는 화계사와 인근 교회, 성당이 함께하는 ‘사랑의 바자회’가 한신대 운동장에서 열린다. 모인 돈은 난치병 환자를 치료하는 데 쓰인다.
지금도 한신대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김경재 교수는 “한신대와 화계사의 우애야말로 다원사회의 모범”이라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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