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말년 작품 세계 한눈에 보여줘
“빈을 찾아온 해외 관광객들이 섭섭해한다. 클림트의 작품을 보겠다며 비행기 타고 왔는데 주요 작품이 통째로 서울로 옮겨가는 바람에 벨베데레 미술관이 텅 빈 것 같다고.(웃음)”
지구상에서 반 고흐에 필적하는 인기를 누리는 화가 클림트. 그의 진수를 소개한 이번 전시는 2월 2일 개막 이후 23만여 명(4일 현재)이 다녀갔다. 전시를 주관한 문화에이치디 윤영현 이사는 “주 관객층은 20, 30대 여성이지만 주말에는 가족 관람객도 상당수를 차지한다”고 밝혔다. 클림트 작품의 최대 소장처인 벨베데레 미술관이 100년간 해외 전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만큼 전시장은 폐막을 아쉬워하는 미술 애호가들로 연일 북적이고 있다.
전시는 15일까지 오전 11시∼오후 8시. 어른 1만6000원, 청소년 8000원, 어린이 5000원. ‘클림트 요일’이란 주제로 이벤트도 마련됐다. 02-334-4254, www.klimtkorea.co.kr
○ 블록버스터전의 업그레이드
이번 클림트 한국전은 국내 대형 기획전의 수준을 한 단계 높인 전시로 평가받는다. 국제미술평론가협회 윤진섭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국내에서 열린 블록버스터전이 겉만 번지르르한 외화내빈의 경우가 많았는데 클림트 한국전은 한 화가의 진면목을 소개한 의미 있는 전시”라고 말했다. 기존의 블록버스터전이 유명 화가의 이름만 앞세워 판화, 드로잉 위주의 짜깁기형 전시에 치중했다면 클림트전은 초기부터 말년까지, ‘유디트’ ‘아담과 이브’ 등 유화부터 벽화, 드로잉을 망라해 작가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고 있다.
또 전시장에 재현된 빈 공방과 포스터 룸 등은 타임머신을 타고 간 듯 작가가 활동했던 세기말 유럽의 문화와 정서를 엿보게 한다. 클림트에게 가려져 있지만 에곤 실레를 비롯해 리처드 거스틀, 오스카어 코코슈카, 막스 오펜하이머, 콜로만 모저 등 그와 동시대에 활동한 작가들의 유화를 감상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작품과 더불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사진과 자료를 충실히 갖춘 전시 구성도 수준급이란 평을 받는다. 이명진 선 컨템퍼러리 대표는 “미술계 인사들도 클림트의 대표작만 알고 있을 뿐인데 이번 전시는 화가의 바탕을 이루는 토대를 알 수 있게 균형 잡힌 전시를 꾸민 점이 눈에 띄었다”며 “교육용으로도 훌륭하다”고 말했다. 한편 클래식 음악으로 클림트의 작품을 재해석한 화음 프로젝트 공연 등 새로운 소통에 대한 시도도 눈길을 끌었다.
○ 취향의 공유
이번 전시는 화가의 상징처럼 알려진 황금빛 그림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클림트의 풍경화와 에로틱 드로잉도 선보여 새롭게 주목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음에 평화를 주는 풍경화와 순도 높은 에로티시즘을 담은 드로잉. 좋은 작품 앞에선 취향의 차이가 없었다. 전문가도 대중도 함께 이해하고 즐거워했다.
기혜경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사는 “우리가 잘 몰랐던 풍경화와 드로잉을 보고 클림트의 위대한 재능에 감탄했다”며 “특히 여성성에 대한 탐구를 보여주는 드로잉은 빈에서도 쉽게 보기 힘든 수준급 작업들”이라고 말했다.
끝으로 베토벤 ‘합창’ 교향곡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34m 길이의 벽화 ‘베토벤 프리즈’를 여유롭게 감상하는 시간도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자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으로 꼽힌다. 세상의 그 어떤 역경과 악(惡)도 예술의 힘으로 극복해 갈 수 있다는 화가의 믿음. 이 벽화뿐만 아니라 모든 작품 안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