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묵당(耕墨堂)’은 근대 화단을 이끈 화가 심전 안중식(1861∼1919)이 사랑방에서 운영한 개인 화실이다. 1901년경부터 이상범 김은호 노수현 변관식 등이 그림을 익힌 곳으로 유명하다. 한데 또 하나의 경묵당이 있었다. 심전의 8촌인 서예가 석정 안종원(1877∼1951)이 1920년경부터 당대 명사들과 교류했던 사랑방의 이름이다. 두 사람은 국내 최초의 근대식 서화단체인 서화협회의 1대와 5대 회장을 지냈다.
7월 5일까지 고려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는 ‘근대 서화의 요람, 경묵당’전은 두 경묵당을 통해 근대 서화가들의 서화 학습 및 교류 과정을 조명한다. 당시 미술교육은 스승의 그림을 아래에 놓고 베끼는 모사, 그림을 보고 그대로 그리는 임모, 현장에서 스케치하는 사생 등 세 가지 방법으로 이뤄졌다. 지금은 보기 힘든 전통 회화 학습 방법을 접하는 기회란 점에서 유익하고, 수묵화를 합작으로 완성하며 친목을 다졌던 교유 과정을 엿볼 수 있는 점은 흥미롭다.
김예진 학예사는 “심전과 석정 등 순흥 안씨 문중에서 보관되던 서화를 기증받아 일반에 처음 공개하는 자리”라며 “두 사랑방에서 벌어진 활동을 통해 근대 문화와 역사를 어림짐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어딘지 서툰 듯한 기색이 남아 있는 이상범과 김은호 등 대가들의 습작, 스승의 ‘빨간 붓’ 첨삭 지도 등을 보면서 거장의 탄생 뒤에는 부단한 수련 과정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02-3290-1513
‘경묵당’전에서 근대 서화의 전통을 재발견했다면 6∼16일 서울 선화랑에서 열리는 문봉선 홍익대 교수의 ‘비어 있는 풍경, 또는 차 있는 풍경’전은 이런 전통을 바탕으로 발전시킨 현대 한국화의 새로운 지평을 만날 수 있다. 수묵을 탄탄히 공부한 작가는 깊은 내공을 동시대의 미의식과 결합해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으로 한국화의 격조를 살려낸다. 보고 있으면 번잡한 세상이 문득 고요해진다.
세찬 바람에 흔들리는 소나무, 강을 뒤덮은 흐릿한 운무, 대지의 미묘한 숨결이 붓 자국과 먹의 느낌만으로 간결하고 담백하게 표현돼 있다. 덜어내고 또 덜어낸 듯 여백이 넘치는 화면에 담긴 우주는 고적하면서도 충만한 조화를 이룬다.
마음속 풍경을 담은 것 같은데 모두 실경을 기초로 한 진경산수화다. 미술평론가 오광수 씨는 “자연이면서 어느 순간 자연을 탈각해 버리는 이 역설적 상황에서 어쩌면 문봉선 예술의 회화로서 자율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고 평했다. 02-734-0458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