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탁환 정재승 소설 ‘눈 먼 시계공’]<87>

  • 입력 2009년 5월 6일 14시 13분


제 18장 나이트메어와 춤을

'휴양지에서 생긴 일'은 많지 않다. 사랑 혹은 도둑질 혹은 죽음과 뺨을 비벼대는 모험. 셋 다 지극히 위험하고 아슬아슬하다. 셋 중 하나도 조마조마한데, 셋 다 동시에 벌어지는 휴양지라면 가지 않는 편이 좋다. 이미 갔다면 목숨부터 지켜라. 사랑을 위해, 의리를 위해, 또 무엇무엇을 위해 나섰다간 개망신 개고생 나아가 개죽음이다.

석범과 민선은 차에서 내려 도로 위를 달렸다. 두 사람이 반쯤 건너갔을 때, 벌써 바닷물이 도로로 차올라 그들의 발목에서 찰랑거렸다.

"이게 뭡니까? 바닷물이 새벽 4시 30분부터 빠지고 1분 동안 달섬과 해변을 잇는 도로가 나타난다는 뉴스는 접한 적이 없습니다."

"그야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라서 그렇죠."

민선이 아무렇지 않은 듯 답했다.

"매일 일어나는 기적이 아니다?"

"1년에 꼭 한 번씩만 몰래 열리거든요. 30년 전만 해도 달섬과 육지가 붙어 있었다는 건 아시나요? 1년에 하루씩, 정확히 말하자면 366일을 주기로 새벽 4시 30분에 물이 빠지고 옛 도로가 1분 동안 세상 구경을 한 후 사라지는 거예요. 정확한 이윤 나도 몰라요."

"366일! 그 주기는 어찌 알아냈습니까? 위키피디아 12.5에서 검색이라도 했습니까?"

"나 혼자만 아는 비밀이죠. 바다생물과 해안선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취미 삼아 특별시 인근 해안 사진들을 모으다가 발견한 거예요. 1년 주기로 하루씩 밀리면서 도로가 나타나더라고요."

"366일마다 벌어지는 모세의 기적이 하필 오늘이란 말이군요. 그걸 지금 나더러 믿으란 겁니까?"

"믿든 말든 은 검사님 자유죠. 하지만 새벽 4시 30분에 달섬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이 도로뿐이에요. 달섬 오픈은 해가 완전히 뜨고도 한참이 지나서랍니다. 아침 9시부터 입장이 가능해요."

"366일 전에도 어떤 놈팡이랑 왔나봅니다."

석범이 노골적으로 비꼬았다. 한 마디 의논도 없이 달섬으로 이끈 그녀가 미웠다.

"위성사진을 통해 5년 전부터 확인은 했지만 직접 와보긴 오늘이 처음이에요."

"왜 오늘에야 온 겁니까? 바닷물이 빠지면서 떠오른 도로를 질주하는 재미가 쏠쏠할 텐데……."

"아무나 함부로 데려올 순 없었어요."

"……아무나 ……함부로!"

석범이 걸음을 늦추며 뒷말을 곱씹는 동안, 민선은 달섬 광장을 가로질러 뛰기 시작했다. 석범은 그녀의 뒷모습이 펄쩍펄쩍 뛰는 캥거루를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광객을 맞지 않은 섬은 고요했다. 일찍 잠에서 깬 새들이 나뭇가지 속에서 푸드덕 날아올랐고, 그늘에서 앞발로 얼굴을 문지르던 다람쥐들은 바위 아래나 나무 구멍을 향해 필사적으로 숨었다. 완만하게 솟은 언덕을 넘으니 제법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졌다. 길이 끝나는 자리 큰 바위 아래 외딴 집이 곱고 쓸쓸했다.

민선은 그 집에서 불과 30미터 쯤 떨어진 곳에 묶인 보트에 서서 손을 흔들었다. 석범은 뛰어 내려가서 보트에 올라탔다. 민선은 핸들을 꺾으며 능숙하게 보트를 몰고 바다로 나갔다.

"이 배는 또 뭡니까? 이건 절돕니다. 당장……."

그녀가 말허리를 붙잡아맸다.

"뭘 그리 궁금한 게 많아요? 그냥 즐기면 안 될까요? 가슴이 뻥 뚫리는 것 같아! 특별시 공긴 너무 답답해요."

"무슨 말입니까? 항균 처리를 깔끔하게 마친……."

"그러니까 답답하죠."

1퍼센트 오차까지 따지던 깐깐한 민선이 맞나 싶었다.

날이 서서히 밝아왔고, 배는 점점 달섬에서 멀어졌다. 시야가 확 트이자 민선이 더욱 속도를 높였다.

"위험합니다. 배를 돌려요. 달섬의 경계를 넘으면, 뮤텍스들이 달려들 겁니다."

비밀스러운 힘을 지닌 뮤텍스 중에는 고래만큼이나 오래 바다에 머무는 이도 있었다. 달섬에서 5킬로미터 이내는 뮤텍스의 출입을 막기 위한 진동막을 둘러 세웠지만, 경계를 넘으면 곳곳마다 위험이 도사렸다. 특히 바다에서는 밤뿐만 아니라 낮에도 뮤텍스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괜찮아요. 한 바퀴만 더 돌고……."

"민선 씨!"

석범이 소리치는 순간 보트가 심하게 요동쳤다. 두 사람은 무엇인가에 심하게 부딪히면서 뒤집힌 보트와 함께 바다로 곤두박질쳤다. 먼저 수면으로 떠오른 석범이 사방을 돌아보며 소리쳤다.

"어딨어요? 민선 씨! 노민선! 어딨는 거야? 대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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