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지구 반대편, 우리 닮은 곳… 뉴질랜드 다시 보기

  • 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빠지다(fall). 뭔가에 빠졌던 적이 언제였던가. 소심한 탓에 그리고 끈기 없는 성격 때문에 하나에 푹 빠져 허우적거렸던 기억은 희미하다. 게다가 나이가 들어가면서는 빠듯해진 주머니 사정, 육아 부담을 감수해야 하는 ‘직장맘’이라는 이유를 들며 나의 무미건조함을 합리화했다. 분명 무언가에 빠져 열정적으로 살았던 때가 없진 않았을 텐데 지금은 그냥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앞만 보고 뛰고 있을 뿐.

우연히 찾아온 지구 반대편 뉴질랜드로의 출장. 그곳은 가을(fall)이란다. 지난달 말 시계추를 잠시 멈추고 두툼한 외투와 함께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로 떠났다. 새벽녘에 도착한 뉴질랜드 오클랜드공항에는 비가 내리고 있었다. 으슬으슬해지는 가을비에 나도 모르게 어깨가 움츠러졌다. 지구 반대쪽에 왔음이 실감났다. 낯선 두려움과 묘한 설렘이 몰려왔다.

○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로

10세기경 뉴질랜드에 처음 정착한 마오리족은 넓고 광활한 땅을 보고 자신들의 언어로 길고 하얀 구름의 나라라는 뜻의 ‘아오테오라’라고 불렀다. 이름처럼 뉴질랜드 하늘에는 유난히 구름이 낮게 드리워진다. 현지 가이드는 “낮은 구름 때문인지 갑자기 비가 내리다가도 금세 날씨가 화창하게 갠다”고 전했다. 뉴질랜드란 이름은 네덜란드 출신 탐험가 아벨 타스만이 1642년 뉴질랜드와 뉴기니 섬을 유럽인 최초로 발견하면서 대륙과 남극이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이 세상에 알려졌다. 타스만이 네덜란드에 있는 자신의 고향(질랜드)과 ‘새로운(New)’이라는 단어를 붙여 뉴질랜드라는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과일로만 알고 있는 키위는 사실 뉴질랜드에만 사는 희귀새의 이름이면서도 뉴질랜드 사람을 가르킨다. 뉴질랜드에서는 남편을 ‘키위 허즈번드’라 부르기도 한다. 여권(女權)이 높은 뉴질랜드 가정 내 서열이 아내 다음 자녀, 노부모, 개 그 다음이 ‘키위 허즈번드’라는 농담이 있을 정도다.

뉴질랜드에서는 퇴직한 노년 부부들이 풍경 좋은 곳에 고급 임대용 별장인 ‘로지(Lodge)’를 운영하며 여생을 보내는 경우가 많다.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3시간가량 떨어진 카티카티에 있는 마나후이 로지에 점심을 먹기 위해 들렀다. 전직 항공관제사 출신 트레볼 미첼 씨 부부가 운영하는 이곳에서 끝이 보이지 않는 푸른 들판을 바라보며 뉴질랜드의 소박한 가정식을 즐길 수 있었다. 미첼 씨 부부가 이날 준비한 음식은 닭고기 샐러드와 아보카도 볶음밥, 구운 도미, 그리고 화이트와인이었다. 화이트와인을 단순히 디저트와인으로만 생각했던 기자에게 뉴질랜드산 화이트와인 특유의 바디감과 지나치지 않은 단맛은 인상적이었다. 한국에는 뉴질랜드 와인이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뉴질랜드 샤도네와 쇼비뇽 블랑은 세계적으로 그 품질을 인정받는다고 한다.

한국인이 온다는 소식에 로지에서 차로 1시간이나 떨어진 한국 식자재 가게를 찾아 포장 김치를 사왔다는 미첼 씨 부부. 포장 김치 안에 있던 방부제를 양념인 줄 알고 “어떻게 넣어야 하냐?”고 물어본 그들의 따뜻한 친절.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온천장에 목욕가방 장사진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즐겨 불렀던 ‘연가(戀歌)’가 사실은 뉴질랜드 마오리족의 민요였다니. 연가의 원제는 영원한 밤의 우정이라는 뜻의 ‘포 카레카레 아나’다. 적군을 사랑했던 젊은 남녀의 슬픈 사랑 이야기를 담은 이 노래는 한국전에 참전했던 뉴질랜드 병사들이 즐겨 부르면서 한국에 전해졌다. 이 전설의 배경이 되는 곳은 바로 뉴질랜드 북섬의 최고 휴양 도시 로터루아다. 온천의 천국인 이 도시 경계선에 들어서자마자 묘한 유황 향, 아니 썩은 계란 향이 먼저 반겼다. 몇 분 지나지 않아 ‘몹쓸’ 냄새도 익숙해졌다. 마치 시골 들판의 고약한 비료냄새처럼. 짬을 내 찾은 호텔 근처 온천장에도 우리처럼 밤늦은 시간에 목욕 가방을 든 뉴질랜드 사람들로 북적였다. 지구 반대편 이 나라도 한국과 통하는 것이 많은 것 같다.

푸근한 민박주인… 해수온천 공중탕… 깍쟁이 드문 나라

오클랜드에서 남쪽으로 5시간가량 떨어진 마웅가누이 산도 한국 동해안과 참 닮은 곳이다. 마웅가누이 산에 가면 꼭 찾아야 할 곳이 바닷물을 끌어와 따뜻하게 덥힌 해수온천이다. 미네랄이 함유돼 미끌미끌한 느낌이 독특하다. 인근에 콘도 형태 리조트가 많아서 가족 단위 이용객이 많다. 한국에 있는 워터파크에 비해서는 규모나 시설 면에서 초라하지만 마웅가누이 산을 뒤로한 채 즐기는 온천욕을 꼭 즐기길. 뉴질랜드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 알아둬야 할 팁 하나. 카페나 레스토랑 종업원들은 커피 주문을 받을 때 “블랙 아니면 화이트?”라고 물어본다. 블랙은 말 그대로 아메리카노이고 화이트는 우유를 넣은 카페라테다.

○ 오클랜드 중심가 소박한 아름다움 돋보여

한국으로 돌아가기 이틀 전 오클랜드를 다시 찾았다. 도착 첫날 서둘러 시내를 빠져나가느라 미처 보지 못했던 오클랜드 전경이 버스 창 너머로 들어왔다. 사방이 모두 대양(大洋)으로 둘러싸인 오클랜드는 녹색 구릉과 파란 바다, 하얀 빌딩이 조화를 이룬다. 꾸미지 않은 본모습으로 보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박한 아름다움’이란 수식어를 붙이고픈 도시다. 오클랜드 중심가 퀸 스트리트는 아담한 규모지만 다양한 인종이 한데 어우러져 활기찬 분위기를 자아냈다. 퀸 스트리트와 교차하는 빅토리아 스트리트를 따라 빅토리아 파크 마켓이 조성돼 있다. 1km 정도 이어지는 거리에는 각종 상점과 미술관, 카페, 레스토랑 등이 늘어서 있다. 기념품을 사야 한다면 가격 면에서는 공항 면세점이 가장 싸다는 점을 기억해 두길.

다음 날 오클랜드에서 40분가량 떨어진 와이헤케 섬을 찾기로 했다. 오클랜드 근해에는 아름다운 섬과 해변이 보석처럼 숨어있다. 모두 오클랜드 페리 부두에서 한 시간 남짓 거리에 있어 한나절 혹은 당일치기 일정의 관광이 가능하다. 마오리어로 ‘작은 폭포’라는 뜻의 와이헤케 섬은 녹음이 짙게 우거진 아름다운 휴양지로 관광 시즌에는 3만 명 이상이 찾는다.

와이헤케 섬에 있는 주택 한편에는 하나같이 2, 3m 높이의 빗물통을 갖추고 있다. 섬에 상수도 시설이 없어 빗물을 받아 생활해야 하기 때문. 그러고 보니 이곳에는 병원도, 신호등도 없다고 한다. 그 흔한 맥도널드도 없다. 원시의 삶이라기보다는 자연에 한껏 몸을 낮춰 사는 것이 그들의 삶이다. 결혼과 함께 와이헤케 섬에 정착했다는 현지 50대 여성 가이드는 “아이들 졸업식이나 생일 때 배를 타고 오클랜드로 가 맥도널드에서 햄버거를 사 먹는 것이 이곳 아이들에겐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했다.

와이헤케 섬은 뉴질랜드 최초로 올리브유를 생산한 곳이기도 하다. 최근 몇 년간 세계 올리브유 대회에서 수차례 메달을 땄다는 올리브유 농가를 찾았다. 1년 중 6주 동안 올리브를 수확하는데 마침 그때였다. 농가 주인은 우리의 방앗간과 같은 곳에서 올리브 열매를 으깨 기름을 짜내고 있었다. 주인은 내게 막 짜낸 올리브유에 잘게 으깬 허브 잎을 넣어 만든 소스와 바게트 빵을 건넸다. 소스에 빵을 찍어 입안에 넣자 올리브유의 쌉싸래한 맛과 허브의 묘한 향이 목 안 깊숙한 곳까지 감돌았다.

와이헤케 섬 곳곳에는 무명 작가들의 작품들을 접할 수 있는 갤러리가 많다. 섬사람들 중 상당수가 예술가라고 한다. 섬 나루에서 수분을 달려 도착한 자연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와이헤케 경치만으로도 쉽게 납득이 간다. 이름 모를 꽃 너머로 깨끗하게 ‘정리된’ 섬의 전경에 마음이 달싹일 즈음 마침 섬사람들을 태운 여객선이 고요한 수면에 파문을 일으킨다. 이 정도 그림이면 예술가 선생들이 몰릴 만하다 싶다.

반나절 비행기에 몸을 실었더니 다시 지구 반대쪽으로 돌아왔다. 멈춰 세웠던 시계추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에 첫발을 내디딜 때처럼 한국에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공항 밖 마른 바닥을 적시는 비를 보자 갑자기 떠오른 생각, 그리고 새로운 계획. ‘다시 무언가에 빠져보는 거야’라고 머릿속에 쓰자마자 몇 가지가 우르르 튀어오른다. 사진, 요리, 자전거타기…. 봄이다.

글·사진=오클랜드, 타우랑가, 로터루아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디자인=박초희 기자 choky@donga.com

“뉴질랜드의 청정 키위로 양념 줄이고 미각 돋우고”

● 손쉽게 만드는 키위요리 3가지

뉴질랜드를 대표하는 과일은 단연 키위. 뉴질랜드에서 키위를 주로 키우는 곳은 북섬에 있는 테푸케 지역이다. 국내 소비자에게도 잘 알려진 제스프리로 납품되는 키위는 대부분 이 지역에서 수확된 것. 기자가 테푸케 지역을 찾은 4월 말은 키위 수확으로 한창 이 지역 농가들이 바쁠 때였다. 바쁜 와중에서도 이 지역에서 10여 년간 키위 농사를 지어 온 키스 밀러 씨 부부가 한국의 낯선 이방인을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 뉴질랜드 현지 TV 요리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출연해 인기를 얻은 스티븐 배리 씨가 이날 저녁을 준비해줬다. 배리 씨는 이날 뉴질랜드 햇과일 키위를 이용한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다. 그는 “뉴질랜드 음식의 가장 큰 특징은 깨끗한 자연에서 나온 식자재의 감칠맛을 그대로 살리는 요리법”이라며 “고기를 부드럽게 하는 연육 작용이 탁월한 키위는 양념의 가미를 최소화하고 현대적인 요리법으로 미각을 돋우는 요리 재료로 최고”라고 설명했다. 배리 씨가 이날 선보인 키위 요리 가운데 한국 주부들도 손쉽게 만들어 볼 수 있는 요리 3개를 소개한다.

정효진 기자 wiseweb@donga.com

▽항공=한국에서 뉴질랜드 오클랜드까지 대한항공이 주 5회(월·수·목·금·토) 운항한다. ▽시차=한국보다 3시간 빠르다. 한국이 오전 9시일 때 뉴질랜드는 정오다. ▽언어=뉴질랜드 공식어는 영어와 마오리어. 대부분의 사람들은 영어를 사용한다. ▽기후=한국과는 정반대. 일년 중 가장 무더운 때는 1, 2월로 최고 기온은 약 25도, 최저 기온은 5도 정도다. 북섬은 화산으로 이뤄져 남섬보다 조금 더 따뜻하다. ▽주의할 것들=뉴질랜드 입국 시 과일, 과일 씨, 땅콩 종류 등 농식물은 어떠한 것도 갖고 들어갈 수 없다. 적발시엔 즉석 벌금 또는 추방을 당하기도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우측에 운전석이 있는 만큼 차량 운행 시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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