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물의 빛은 살아있는 작품”

  • 입력 2009년 5월 8일 02시 56분


루어리 글린 작가(왼쪽)의 ‘춤추는 로봇’(오른쪽)은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사진 제공 아트센터 나비
루어리 글린 작가(왼쪽)의 ‘춤추는 로봇’(오른쪽)은 사람의 움직임에 반응한다. 사진 제공 아트센터 나비
과학-미술의 만남 ‘앨리스 뮤지엄 2009’展설치현장

한 일본인 부부가 방 안에 작은 정원을 만들고 여러 종류의 허브를 심는다. 기계 부품과 작은 카메라가 널브러진 옆방에서는 연방 “오 마이 갓!(Oh my God!)”이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1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에서 열린 ‘앨리스 뮤지엄 2009’ 미디어아트 전시회 개막을 사흘 앞둔 지난달 28일 설치 작업이 한창이던 전시회장을 찾았다.

좁은 방에 정체를 알 수 없는 하얀 돔이 있다. 벽면에 감춰진 문을 열자 허브향이 은은하다. 허브가 심어진 화단에는 허브 씨앗이 담긴 상자가 있고 케이블이 연결돼 있다. ‘생물의 빛’이라는 작품의 내부다. 일본인 미디어 아티스트 안도 다카히로 씨와 그의 부인 안도 도모에 씨는 컴퓨터 화면을 보며 허브, 양배추, 브로콜리 씨앗이 방출한 생체광자의 세기를 살폈다.

생체광자는 동물이나 식물이 발산하는 빛으로 사람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희미하다. 안도 다카히로 씨는 생체광자를 ‘슈퍼카미오칸데’의 원리를 응용한 장치를 이용해 돔 형태의 스크린에 비춘다. 씨앗의 종류와 개수를 적당히 맞춰주는 것이 작품의 비밀이다. 슈퍼카미오칸데는 우주에서 날아오는 중성미자를 측정하는 장치로 일본 도쿄대의 고시바 마사토시 교수가 이 관측기를 활용해 2002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안도 다카히로 씨는 “2002년 이후 소형 슈퍼카미오칸데 개발이 활발해져 제약회사는 물론 예술 작품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브 정원을 관리하는 안도 도모에 씨는 “이번 작품은 온도와 습도를 고려했을 때 2주에 한 번씩 물을 줘야 한다”며 “생물의 빛은 살아있는 작품”이라고 밝혔다.

“오 마이 갓”을 외치던 사람은 ‘춤추는 로봇’의 작가인 영국인 루어리 글린 씨. 그는 “로봇을 움직이게 하는 서보모터가 고장 났다”고 말했다. 일정대로라면 로봇을 천장에 매달아 사람의 동작에 얼마나 반응하는지 점검해야 하는데 동작조차 하지 않는다. 하지만 글린 씨는 “일정에 쫓길 뿐 큰 걱정은 안 된다”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곳이 ‘로봇 강국’ 한국이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에서 전시할 때는 로봇을 여러 대 만들 만큼 예비 부품을 준비하는데 이번에는 예비 로봇 한 대만 가져왔다. 그는 “점심시간까지 못 고치면 로봇 부품을 파는 곳에서 살 생각”이라며 “한국에는 없는 부품이 없다”고 말했다.

오프닝 무대에서는 영국인 ‘테크니션’ 스티븐 존스 씨가 ‘하이 스텔락’이라는 작품을 점검하고 있었다. 테크니션은 작가를 대신해 미디어아트 작품을 설치하는 전문가다. 존스 씨는 1976년 호주에서 백남준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며 처음 테크니션으로 등단했다. 그는 “한국에 오자마자 백남준 아트센터부터 방문했다”며 “위대한 작가의 고국이라 그런지 고성능 컴퓨터나 첨단 영상장비가 발달해 미디어아트엔 최상의 조건”이라고 밝혔다.

전동혁 동아사이언스 기자 jer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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