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5년 9월 일본이 조선의 개항을 압박하기 위해 강화도 앞바다에 군함을 보내 조선 초병과 무력 충돌한 ‘운요(雲揚)호 사건’을 기획한 장본인이 이토 히로부미(1841∼1909)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왔다. 김흥수 공군사관학교 교수(사학)는 9일 한일관계사학회 발표회를 앞두고 미리 배부한 논문 ‘운요호 사건의 주모자는 누구인가’에서 이같이 밝혔다. 운요호 사건은 일본 정권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개입했을 가능성만 제기됐을 뿐 구체적인 경위는 베일에 가려져 있다.
김 교수는 최근 ‘이토 히로부미 문서’의 제1권 ‘비서류찬 조선교섭 1’(秘書類纂 朝鮮交涉 1)에 실린 운요호 관련 사료 중 일본 대외정책 관련 법률조언을 했던 프랑스 법학자 귀스타브 에밀 부아소나드가 작성한 ‘각서(覺書)’를 분석했다.
이 각서에는 운요호가 포격당할 경우 ‘메이지 정권과 외교 관계를 수립하면 보상을 강하게 요구하지 않겠다’고 조선 측과 협상하라고 적혀 있다. 운요호가 출항하기 하루 전인 9월 11일 이 문서가 작성됐다는 점도 운요호 사건이 우발적으로 발생했다는 일본의 주장과 달리 치밀한 기획이었음을 입증하는 자료로 보인다. 게다가 이 문서는 정치 외교와 관련이 없는 공부성(건설교통부 격) 용지에 기록됐으며 당시 이토는 공부성 수장인 공부경이었다.
황장석 기자 suron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