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살짜리 정도의 지능밖에 갖지 못했지만 일반인보다 뛰어난 달리기 능력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스무 살 자폐 청년의 이야기. 2005년 개봉한 영화 ‘말아톤’이다. 영화를 통해 불굴의 도전 의지에 감동하고 자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을 보며 이 책을 기획했다. 그해 봄부터 자폐와 관련해 자료들이 축적돼 있는 미국과 유럽의 책을 수소문했다.
그런데 정작 우리는 기획 의도와는 다른 방향의 책을 골랐다. 책을 찾던 중 ‘서번트 신드롬(savant syndrome)’이라는 개념을 처음 알게 됐기 때문이었다. 이 개념은 자폐나 정신지체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특정 분야에서 놀라운 재능을 가진 현상을 의미하는 말로 자원봉사자 공무원 공복 등을 뜻하는 서번트(servant)와는 다른 개념이었다. 혼자서는 밥도 먹을 수 없을 만큼의 중증 장애를 가졌지만 날짜 계산, 음악 연주, 그림 그리기, 암기 등 여러 분야에서 인간 능력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사람들. 이 책은 그들의 삶을 기록하고, 그 놀라운 능력의 과학적 배경을 파헤친 책이었다.
저자가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는 서번트 신드롬 연구에 평생을 바친 정신과 의사이자 저술가. 1988년 영화 ‘레인맨’에서 자폐를 앓는 형으로 출연한 더스틴 호프먼의 연기 조언을 맡기도 했다. 최대한 빨리 선보이자는 생각에 2006년 4월 독자들 앞에 책을 내놨다. “이런 정도면 적어도 3만 부가량은 나가지 않겠어?” 오판이었다. 출간 3년이 넘은 지금까지 1만 부가량이 팔렸으니 외면 받은 건 아니지만 뜨거운 반응도 없었던 셈이다.
사실 처음부터 낯선 개념을 제목으로 내야 할지가 걱정이었다. 고민 고민하다 우리가 대중을 이끌어보자는 의욕에서 과감하게 ‘서번트 신드롬’이라는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독자들에겐 어려운 개념이었던 것 같다. ‘위대한 백치천재들 이야기’라는 부제목도 큰 힘이 되지 않았으니…. 그래도 한편으론 뿌듯하다. 우리 주변의 ‘특별한 이웃’을 좀 더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책을 냈다는 만족감 덕분이다.
박 정 철 홍익출판사 편집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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