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소박한 시어로 보듬는 몹쓸 그리움의 상처들

  • 입력 2009년 5월 9일 02시 56분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 고영 시집/112쪽·7000원/문학세계사

“마음이 술렁거리는 밤이었다/수수깡이 울고 있었다/문득, 몹쓸 짓처럼 사람이 그리워졌다/…먼 하늘 위에서 숨통을 조여오는/그믐달 눈꼴/언제나 몸에 달고 살았던 위험이여/누군가 분명 지척에 있다/문득 몹쓸 짓처럼 한 사람이 그리워졌다”(‘고라니’)

몹쓸 그리움과 숨통을 조여 오는 상실감. 하지만 따스함과 유머가 공존하는 소박한 서정시들. 고영 시인(43)의 두 번째 시집 ‘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에는 가족과의 소소한 일상부터 유년 시절의 추억, 절실한 그리움과 사랑을 노래한 작품들을 담았다.

시인의 예민한 촉수는 슬픔과 추억과 괴로움이 함께 뒤섞인 누군가에 대한 절절하고 애틋한 그리움(‘너라는 벼락을 맞았다’)이나 배추밭에서 판 품으로 자식들을 키운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상처’)을 오간다. 순수와 천진함 같은 서정의 세계들은 시인이 구사하는 언어의 섬세한 결 덕에 한층 돋보인다.

“가늘고 고운 햇발이 내린다/햇발만 보면 자꾸 문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다/종일 들판을 헤집고 다니는 꼴을 보고/동네 어른들은 천둥벌거숭이 자식이라 흉을 볼 테지만/흥! 뭐 어때,/온몸에 햇발을 쬐며 누워 있다가/햇발고운 가락을 가만가만 손가락으로 말아가다보면/햇발이 국숫발 같다는 느낌…”

사회에서도, 가정에서도 겉도는 중년 가장의 모습은 쓸쓸하면서도 허탈한 웃음을 준다. ‘서천 가장자리에 외롭게 뜬 초췌한 낮달’, 낮술에 취해서 ‘이놈의 집’을 못 찾아 황망해진 사내(‘이사’)는 방향을 잃고 사는 이 시대 모두의 자화상이기도 하다.

“어쩌다가, 어쩌다가 몇 달에 한 번꼴로 들어가는 집. 대문이 높다/…아무도 놀아주지 앉는 식탁에 앉아 소주잔이나 기울이다가/혼자 적막하다가/문득,/수족관 앞으로 다가가 큰 소리로 인사를 한다./블루그라스야, 안녕! 엔젤피시야, 안녕!/너희들도 한 잔 할래?/소주를 붓는다.”(‘황야의 건달’)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