於는 ‘∼에서’이다. 恂恂은 온화하고 공손한 모습, 혹은 신실한 모습이다. 같은 글자를 겹친 말을 疊語(첩어)라 한다. 如는 형용사 뒤의 助字이다. 似不能言者는 말을 제대로 내지 못하는 듯이 한다는 뜻으로, 謙遜(겸손)한 태도를 가리킨다. 宗廟는 왕실의 신령을 제사지내는 곳, 朝廷은 정치를 행하는 곳이다. 단, 정약용은 옛날 종묘에서 조회를 보고 명령을 선포했으므로 종묘와 조정은 모두 정치의 장이라고 보았다. 便便(편편)은 술술 말을 분명하게 잘하는 모습이다. 조선시대 언해본은 ‘변변’으로 읽었다. 唯謹爾의 唯는 한정의 뜻을 나타내고 爾는 助字이다.
공자는 향리에서는 父兄과 宗族을 恭敬(공경)해서 賢能과 知慧를 내세우지 않았고 종묘와 조정에서는 禮法과 政令을 分辨(분변)하기 위해 상세히 말했다. 고려 때 李齊賢(이제현)은 ‘(력,역)翁稗說(역옹패설)’에서, 神宗 때의 권세가 奇洪壽(기홍수)와 車若松(차약송)이 中書省(중서성)에 合坐해서는 고작 孔雀(공작)과 牡丹(모란)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아서 남의 비판을 받았다고 적었다. 조선시대 정조대왕은 젊은 관료들이 조정에서 천한 말을 주고받는다고 개탄했다. 사적 생활과 공적 활동을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 그를 어떻게 신뢰하랴!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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