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야크와 함께 하는 에코 트레킹]제주 사려니 숲길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숲을 사랑하는 분에게, 이제 막 걷기의 즐거움에 맛들인 분께, 그리고 청징한 공기와 아름다운 새들의 노랫소리가 몹시도 그리운 분께 작은 선물을 마련했습니다. 이달 17일 (사)제주특별자치도 산악연맹이 공개하는 한라산의 ‘사려니 숲길’입니다. 이 길은 비자림로의 삼나무 숲(제주시)에서 시작해 한라산 중산간 동쪽자락의 거대한 원시림을 남북으로 종단해 사려니 오름(서귀포시 남원읍)까지 이어지는 총연장 15.5km의 아름다운 숲길입니다. 이 길이 ‘선물’이 되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산지가 발달한 우리나라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평지 숲길’이라는 희소성 때문입니다.》

평탄한 원시림 15.5km

어린이-어르신도 즐겁다

오고 내리는 산지 숲길은 걷기라 해도 등산에 가깝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이 길은 어린이도 또 어르신도 산책 삼아 걸을 수 있을 만큼 평탄합니다. 게다가 이 숲은 아주 특별합니다. 제주특별자치도와 국립산림과학원(난대림연구소)이 수십 년간 정성 들여 가꾸어온 시험림, 인간간섭을 차단하며 완벽하게 보전해온 해발 500m 안팎 한라산 중산간지대의 원시림으로 이뤄졌습니다.

명상하며 걷는 숲길, 자연과 소통하는 숲길, 그래서 그 숲 기운을 통해 나를 정화하는 생명의 숲길. 아마도 이양하 선생이 살아계시다면 예서 ‘신록예찬’ 2편을 읊지 않았을까 상상도 합니다. 그 사려니 숲으로 걷기여행을 떠납니다. 17일부터 31일까지는 숲길걷기는 물론 산림 세러피, 숲 속의 체조, 명상 등 이벤트가 있는 2009 제주 산림문화체험도 열립니다.

아득한 옛날 제주 들녘을 호령하던

테우리(말몰이꾼)들과 사농바치(사냥꾼)들이 숲길을 걸었습니다.

그 길을 화전민들과 숯을 굽는 사람

그리고 표고버섯을 따는 사람들이 걸었습니다.

한라산 맑은 물도 걸었고 노루 오소리도 걸었고

휘파람새도 걸었습니다.

그 길을 아이들도 걸어가고 어른들도 걸어갑니다.

졸참나무도 서어나무도 함께 걸어갑니다.

우리는 그 길을

사려니 숲길이라 부르며 걸어갑니다. (‘사려니 숲길 걷기’ 안내장에서)

실제로 그랬다. 숲길행사 안내장을 받아들고 직접 답사한 사려니 숲길은. 오소리가 걷던 길을 사냥꾼이 뒤따랐고 사냥꾼 발에 자국난 길로 말몰이꾼이 지나갔다. 마을과 마을은 이렇게 이어졌고 사람과 사람은 그렇게 만났다. 그렇다. 사람은 길을 내고 길은 역사를 만든다. 길 자체가 역사요, 사람이다.

그 숲에서 나는 여러 사람을 만났다. ‘가지 않은 길’의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를 만났고 ‘보전이란 땅과 사람의 조화를 추구하는 것’이라고 저서 ‘모래 군의 열두 달’에서 담담하게 외친 알도 레오폴드(환경윤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사람)도 만났다. ‘나는 걸을 때만 명상에 잠긴다’는 철학가 장자크 루소도 만나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는 그의 말도 체험해 보았고 ‘걷기는 발과 땅, 인류, 이 세상 사이의 변화무쌍하고 지속적인 대화’라는 번득이는 혜안을 ‘걷기, 인간과 세상의 대화’라는 저서를 통해 보여준 조지프 아마토(미국의 역사가 문화인류학자)도 만났다. 이 숲은 그토록 많은 상념을 자극할 만큼 메시지가 풍부했다.

숲의 사전적 정의는 ‘나무가 무성하게 들어찬 곳’이다. 빗물을 머금어 ‘거대한 녹색 댐’이라고 불리기도 하고 소음을 차단해 ‘아름다운 방음벽’이라고도 한다. 1ha의 숲이 하루 44명분의 산소를 공급한다던가, 연간 16t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12t의 산소를 방출한다는 숲의 이로움은 말하면 잔소리가 된 지 오래. 그럼에도 숲은 늘 사람에게 경이로운 존재고 신비로운 곳이다.

그날 그 숲에서다. 거대한 삼나무가 드리운 진초록의 숲 그늘, 청징하다 못해 알싸하게 느껴진 짙은 숲 향이 내 찌든 폐부 깊숙이 파고들던 그때. 숲의 정령처럼 불쑥 나타난 이름 모를 새의 노랫소리에 꽉 막혔던 내 오감은 고무풍선 터지듯 한순간 동시에 활짝 뚫렸다. 그곳은 시인 조기조가 읊던 ‘새의 나라’였다. ‘새의 나라에 왔다 새소리가 들리는 곳은 새의 나라다 새는 사랑하겠다고 운다지 그래서 울음이 노래가 된다지 새의 나라에 와서 노래를 배운다 울어 노래가 되는 울음을 배운다’고 했던.

5월 숲은 숲의 극치다. 만약 그곳이 청정 자연의 한라산, 해발 500m 중산간지대의 원시림이라면 극치의 극상이다. 그래서 권한다. 이 숲에서만큼은 침묵하시기를. 말하기보다는 생각하기를, 생각하기보다는 느끼기를, 느끼기보다는 동화되기를, 동화되기보다는 한순간에 무너지기를. 왜. 숲이 원하는 게 그것이기에.

그리고 사려니 숲 한가운데 ‘월든’에 닿거들랑 꼭 할 일이 하나 있다. ‘월든: 숲 속의 생활’을 펼치고 어떤 페이지든지 읽는 것이다. 이 책은 미국 하버드대를 졸업한 전도양양한 27세의 청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2년여 간 매사추세츠 주 콩코드 숲 속의 작은 호숫가에 오두막을 짓고 자급자족의 삶을 영위하면서 통찰한 지혜를 담고 있다. 그리고 그의 말을 기억하며 걸어보자. ‘일체의 물질적 근심과 걱정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한가로이 걷지 않으면 건강과 온전한 정신을 유지하지 못한다.’는 그 말. 숲은 그 자체가 생명이다.

제주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트레킹 정보|

◇ 사려니 숲길

▽사려니 숲길=숲길은 길다. 15.5km나 된다. 네다섯 시간은 족히 걸린다. 하지만 걱정은 마시라. 중간쯤에 성판악과 붉은오름으로 빠져나가는 길이 있다.

▽주요 포인트=숲 길은 출발지점(○1숲에 ON!)부터 도착지점(○10사려니오름)까지 10개 포인트로 구성됐다. 각 포인트는 저마다 독특한 테마를 갖고 있다. 산림문화체험기간(17∼31일)에는 ○10에서 ○1로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문의 064-750-2514, 064-753-0848. 그에 걸맞은 이벤트도 진행된다.

○1숲에 ON! ‘사려니 숲길 들머리’: 숲의 모든 것 전시. 수종별 목재 및 표고 재배장 전시, 목공체험. 피톤치드를 발산하는 편백나무조각 목걸이 선물.

○2참꽃나무 숲 ‘제주인의 꽃’:5월에 피는 진달랫과 빨간 꽃.

○3새왓내의 아이들 ‘숲 속의 아이들’: 유치원 초등생을 위한 숲 해설 및 체험 프로그램. 새왓내는 천미천 계곡의 작은 물길.

○4숲 Dream ‘청소년들이여, 숲에 강 놀게’: 중고교생을 위한 ‘자연 나눔’ 프로그램. 물찻오름 입구.

○5월든 ‘치유와 명상의 숲’: 사려니 숲길 한중간에 자리 잡은 명상의 숲. 자연 나눔, 명상, 시 낭송, 숲체조, 사려니 숲이야기 프로그램 운영.

○6서어나무 숲 ‘가꾸는 숲’: 서어나무는 15m까지 자라는 낙엽활엽교목으로 화전, 숯, 표고재배 등 제주도 산림문화 형성에 큰 몫을 해왔다.

○7암반욕: 돌 많은 제주도에서 전래해온 민간요법. 햇빛으로 달궈진 뜨거운 돌을 안거나 바위에 누워 땀을 내는 것으로 바위가 발산하는 원적외선과 음이온이 신진대사를 촉진시켜 준다고 한다.

○8더불어 숲 ‘숲과 사람들’: 숯 가마터와 19세기의 화전, 버려진 표고재배장 등 제주도의 산림문화를 볼 수 있는 곳.

○9삼나무 숲 ‘나무를 심는 사람들’: ‘난대산림연구소’의 한남시험림에 조성된 울창한 삼나무 숲(1930년대 조림)은 사려니 숲길에서도 백미에 속하는 진풍경. 성장속도가 빠른 삼나무는 제주도와 한라산의 감귤 밭(바람막이용) 및 산림녹화를 위해 심어졌다.

○10사려니 오름:말발굽 형태의 분석구(해발 513m). 표고 98m의 정상까지는 30분쯤 걸리는데 한라산 중산간지대의 원시림 바다가 펼치는 장관을 목도한다.

▽ 숲길 걷기 프로그램=17∼31일 운영. △산림세러피: 숲명상(삼나무숲)은 매일, 암반욕과 태극기공(삼나무 숲)은 주말에만. △숲길 걷기

▽숲길 들머리 찾아가기=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국도 11호선으로 남행하다 5·16도로가 시작되는 교래입구 삼거리에서 좌회전, 지방도 1112호선(비자림로)을 따라 삼나무 숲 도로를 5분쯤 가면 길 오른쪽에 임도 입구가 보인다.

◇ 맛집

▽어미도(魚美島)=고등어조림과 물회(자리 한치 옥돔) 등 제주토속음식을 내는 30년 역사 향토식당. 여주인 조정삼 씨는 선주와 직거래를 통해 주낙으로 잡은 생선을 주로 구해 쓴다고. 옥돔국 갈칫국 7000원, 고등어조림 1만5000원, 2만 원, 옥돔물회 8000원. 제주시 삼도1동 570-13(한라일보 건너편 골목), 064-753-5989

▽용담골(주인 김유태)=한 상차림(4인용·8만 원)으로 제주도의 토속해물요리를 푸짐하게 맛보는 향토식당. 전복성게물회, 전복삼합, 멜(멸치)튀김, 전복과 가오리 회, 생선구이, 고등어김치조림, 존다니(개상어)된장찌개가 차례로 나온다. 10명 이상은 사전주문 필요. 제주시 용담1동 248-22(제주공항에서 자동차로 5분 거리). 064-752-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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