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麗水)는 ‘고운 물’이다. 여수 앞바다는 사철 푸른 하늘을 껴안고 출렁인다. 서대는 바로 그 물에서 산다. 맑은 물 먹고 구름 똥 누면서 산다. 비린내가 나지 않는다. 여수사람들은 서대를 제사상에 찜으로 올린다. 연한 적갈색 몸의 서대가 발그레 접시에 가부좌를 틀고 있다.
서대는 가자미의 사촌쯤 되는 납작 생선이다. 언뜻 보면 옛날 가죽신 깔창 같다. 입이 작고 긴 타원형이다. 작은 비늘이 빗살무늬처럼 촘촘하게 나 있다. 머리 쪽을 마주봤을 때 두 눈이 오른쪽에 몰려있다. 도다리와 같다. 눈 없는 쪽은 하얀 살집이다. 크기는 30∼40cm쯤 될까.
여수사람들은 오동도의 동백꽃이 피 토하듯 땅에 우르르 떨어지면, 서대 생각에 슬슬 군침이 돈다. 입이 달뜬다. 4월부터 7월까지가 서대 맛이 가장 좋은 때인 것이다. 서대가 연한 붉은색을 띤 것은 땅바닥에 나뒹구는 동백꽃을 보고 가슴이 빨갛게 멍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대부분 생선이 그렇듯 서대 역시 회가 으뜸이다. 구이나 찜은 한 단계 떨어진다. 여수사람들은 서대회무침을 좋아한다. 한여름 김 무럭무럭 나는 쌀밥에 서대회무침을 비벼 먹는 것을 즐긴다. 여기에 한입 깨물면 코끝이 찡하고 알싸한 돌산갓김치와 고소한 참기름을 곁들이면 뭐라 말할 수 없이 황홀하다. 알이 톡톡 터지는 갓김치 씹는 소리는 덤으로 얻는 즐거움이다. 소주보다는 막걸리가 궁합이 맞는다.
서대회는 담백하다. 하지만 서대회무침은 시큼하고 새콤하다. 혀를 살살 녹이는 감칠맛이 있다. 여수사람들 말로 ‘개미’가 있다. 여기엔 막걸리식초로 만든 초고추장에 그 비밀이 있다. 그것으로 무채처럼 가늘게 썬 서대와 다진마늘 상추 부추 양파 무 오이 치커리 깻잎 미나리 쑥갓 배 당근 등 각종 야채를 버무리면 서대회무침이 된다,
막걸리식초는 고두밥에 누룩과 막걸리로 만들지만, 일단 한 번 만들어진 막걸리식초는 떨어질 때쯤 그 통에 막걸리를 부어놓고 기다리면 저절로 식초를 만들어 낸다. 요쿠르트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여객선터미날 앞 구백식당(061-662-0900)과 중앙동의 삼학집(061-662-0261)에 발길이 붐빈다. 구백식당의 손춘심 씨(61)는 26년 경력의 서대회무침 숙수다. 손 씨는 서대가 옛날에는 많이 잡혔지만 갈수록 귀해져서 걱정이다.
“한마디로 서대는 양식이 안 되는 고급 생선이다. 요즘은 많이 잡히지도 않는다. 서대는 찜이나 구이로 먹어도 고소하고 맛있다. 영화감독 임권택 씨는 감자 넣고 매콤하게 끓인 서대매운탕을 아주 좋아하신다. 우리 집에 그분이 오시면 메뉴에는 없지만 일부러 서대매운탕을 끓여드린다.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면 나도 행복하다.”
서대회무침 비빔밥은 갓김치를 얹어 먹어야 맛있다. 무침의 새콤한 맛에 갓김치의 씁쓰름하면서도 톡 쏘는 맛이 잘 어우러진다. 갓 줄기의 알이 톡톡 터질 때마다 코끝이 시큰하다. 그럴 땐 밑반찬으로 나온 시래기된장국이나 물갓김치를 한 숟가락 떠 먹는다. 향긋한 취나물이나 콩나물 무침을 조금 먹어도 좋다. 입안이 개운하고 담백해진다. 갓김치의 멸치젓갈 맛까지 한순간에 가신다.
물갓김치는 보통 말간 분홍빛이다. 토종 붉은 갓으로 담갔기 때문이다. 붉은 갓은 톡 쏘는 맛이 푸른 갓보다 더하다. 하지만 물김치를 담그면 시원하다. 깊은 맛이 우러난다. 일본에서 들어온 푸른 갓은 달착지근한 맛이 많다. 일본에선 ‘키가 큰 채소’라는 뜻으로 다카나(高菜)라고 부른다. 일본사람들은 이 푸른 갓을 소금에 절여 쓰케모노라는 일본식 갓김치를 담가 먹는다.
서대회무침 비빔밥엔 금풍생이 구이를 곁들여야 안성맞춤이다. 금풍생이(군평선어, 딱돔)는 너무 맛있어서 여수사람들은 ‘샛서방고기’라고 부른다. 미운 남편은 맛없는 양태머리 주고, 예쁘고 달콤한 샛서방은 금풍생이 구이를 준다는 것이다. 양태는 머리만 커다란 천덕꾸러기 생선이다. 금풍생이는 손바닥만한 크기. 머리가 크고 뼈가 억세다. 생김새가 우락부락하지만 구우면 맛있다. 구울 땐 배를 가르지 않고 그대로 굽는다.
여자는 남자를 낚고, 남자는 여자를 낚으려다 낚인다던가. 여수에 가면 서대에 낚이고, 금풍생이를 낚으려다가 낚인다. 갓김치에 낚이고, 한일관(061-654-0091) 해산물한정식에 코가 꿰인다. 삼치회집 선월(061-653-9200)에서 아득하고, 돌게장(민꽃게)백반집 두꺼비식당(061-643-1880)에서 넋을 잃는다. 그러다가 다시 서대회무침에 정신을 차린다. 금풍생이 구이에 입맛을 다신다.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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