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테마 에세이]스승<3>박성원

  • 입력 2009년 5월 15일 02시 56분


마음을 길러주신 ‘샘물’

작은 샘물이 있습니다. 샘물은 낮은 곳으로 천천히 흘러갑니다. 돌멩이가 나타나면 돌멩이를 비켜가고, 바위가 가로막으면 샘물은 몸을 쪼개 비켜갑니다. 물은 다투지 않습니다. 산짐승이 와서 물을 마십니다. 그래도 마냥 가만히 있습니다. 흐르던 샘물은 이번엔 식물을 만납니다. 식물의 뿌리에 자신을 내줍니다. 샘물은 늘 희생해 무언가를 자라게 합니다.

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소년은 무언가가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그래서 언제나 바빴고 또 목이 말랐습니다. 그때마다 소년은 샘물을 마셨고 샘물을 마실 때마다 키와 몸이 자랐습니다. 몸이 다 자랐을 때 소년은 차츰 어릴 때부터 마셔왔던 샘물을 잊어갔습니다.

소년은 자라서 어느덧 선생이 되었습니다. 선생이 된 소년은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옛 선생님들이 말씀하신 여러 가지를 말합니다. 그러다가 문득 몸짓이나 목소리까지 자신을 가르쳤던 선생님들을 닮았음을 깨닫습니다. 가르침을 깨닫는 데도 시기가 있는 것일까요? 선생이 된 소년은 그제야 알았습니다. 샘물은 선생님이었고, 샘물을 마시고 잘 자란 건 자신이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선생님의 가르침으로 자란 것은 우리들의 몸이 아니라 마음이었습니다.

선생님, 그동안 잘 지내셨습니까? 생각해 보니 찾아뵌 지 너무 오래되었습니다. 어떤 의학보고서를 보니 중년이 되면서부터는 키가 조금씩 줄어든다고 합니다. 육체의 기능이 불혹을 넘기면서부터는 서서히 퇴화하는 까닭이겠지요. 그래서 얼마 전부터 저도 걷기와 등산을 시작했습니다. 걸으면서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몸은 성년이 되면서부터 더는 자랄 수 없지만 정신과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말입니다. 후배들의 소설이 제 문학의 스승이 될 수 있는 까닭도, 젊은 철학자들의 글이 귀감이 되는 이유도 바로 마음만은 늘 자라고 있기 때문이겠지요. 선생님, 왜 이제야 선생님의 가르침을 깨달았을까요. 저는 그저 매년 자라는 제 키에만 우쭐해 있었습니다. 진정한 성장이나 진보는 몸의 자람만이 아닌데도 말입니다. 저희는 선생님의 가르침을 잊고 살았습니다. 그렇지만 선생님은 재촉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들이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말입니다. 그런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미술을 보여주신 초등학교 때 남각현 선생님, 음악의 세계를 들려주신 중학교 때 한영창 선생님, 국어를 통해 저에게 미래의 꿈을 갖게 하신 고등학교 때 라영규 선생님, 그리고 대학원에서 저에게 문학의 세계를 알려주신 홍기삼, 장영우, 황종연 선생님. 고맙습니다.

박성원 소설가·동국대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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