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오늘 일은 아니지만 가수가 노래만 하고, 배우가 연기만 하면서는 연예계에서 인기를 유지하기 힘든 시절이다.
사람들은 이제 분야에 상관없이 연예인에게 ‘당연히’ 엔터테이너의 자질을 기대한다. 하지만 소위 ‘예능’에 익숙하지 않은 연예인에게 이런 기대는 곤혹스럽다.
한경일(29)은 노래 잘하는 가수다. 2002년 데뷔해 지금까지 5장의 정규 음반을 통해 ‘한 사람을 사랑했네’, ‘내 삶의 반’ 등의 히트곡을 내놓았고 햇수로 8년 동안 발라드 한 장르만 고집한 뚝심의 소유자다.
하지만 경력이 쌓여도 여전히 낯선 건 노래만 불러서는 살아남을 수 없는 냉혹한 연예계의 환경이다.
“환경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건 제 탓이죠. 그래도 이번 음반을 준비할 때는 마음이 달랐어요. 노래할 때 심장이 가장 세게 뛴다는 걸 새삼 깨달았죠.”
2007년 말 5집을 발표하고 이듬해 봄까지 무대에 섰던 한경일은 음반활동을 중단하고 나서는 미사리 카페 촌에서 노래를 불렀다. 그 기간이 9개월. 그는 “제 노래를 듣고 좋아해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이어서 항상 편하게 부를 수 있었다”고 돌이켰다. 그리고 이달 초 싱글을 출시하고 다시 무대에 오를 채비에 나섰다.
그 사이 변화도 맞았다. 데뷔부터 함께 호흡을 맞췄던 소속사를 떠나 새로운 사람들과 만났다. 두 회사가 절친한 까닭에 결과적으로 두 곳의 지원을 받는 행운을 누리고 있다.
“그동안 음반 공백기에는 무조건 다음 앨범을 내야 한다는 부담에 노래 부르는 일이 갖는 의미를 깊이 생각할 기회가 없었어요. 이번에는 의욕이 커요. 혼자 시작하는 첫 도전이라 하고 싶은 일도 많아요.”
의욕이 남다른 상태에서 작업해서인지 싱글 타이틀곡 ‘앓아요’는 한경일의 가창력이 여느 곡보다 돋보인다. 고음을 처리하는 깔끔한 표현력도 여전하다.
“주변에선 저더러 ‘그래도 5집 가수잖아?’라고 물어요. 여유있게 활동하라는 얘기죠. 하지만 아직도 저를 모르는 대중이 더 많잖아요. 4, 5집을 미처 듣지 못했다면 5년 만에 나왔다고 생각할 사람도 있을 거예요.”
“노래하는 시간 외에는 가수란 사실조차 잊고 산다”는 한경일은 그래서 노래 부를 때만큼은 누구보다 전투적이다.
“더 솔직히 고백하자면 시간이 흐를수록 노래 부르는 일이 긴장돼요.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한 몫을 하죠. 음악 프로그램 리허설에 갔을 때 반주만 들어도 심장이 쿵쾅거리는, 떨리는 기분을 짐작하시겠어요?”
한경일이 이루고픈 목표는 드라마 OST참여와 일본 진출. 드라마 주제가를 통해 대중에게 인지도를 높이려는 계획과 함께 2007년 말 일본 오사카에서 단독 공연을 개최한 경험을 살려 현지에 본격적으로 나서고 싶은 꿈도 키우고 있다.
“요즘엔 ‘처음부터’라는 단어를 늘 생각해요. 다시 시작하는 각오로 무대에 오를 겁니다.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도 적극적으로 출연해야죠. 이왕 ‘예능 늦둥이’가 된다면 더 좋겠지만요(웃음).”
이해리 기자 golf1024@donga.com
사진=임진환 기자 photol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