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이발소 앞에 서서 참외를 깎고/목로에 앉아 막걸리를 들이키면/모두들 한결같이 친구 같은 얼굴들”(‘파장’)
1960, 70년대 휴대전화도 컴퓨터도 없던 시절이지만 문인들에겐 그 이상의 낭만이 있던 때였다.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 우르르 아무 시인이나 소설가의 집에서 밥 얻어먹고, 잠을 청했다. ‘농무’의 시인 신경림 씨(74)가 그 엄혹했던 시절 가난한 문사들의 천진난만한 기행과 해프닝, 가슴 찡한 일화들을 엮은 ‘못난 놈들은 서로 얼굴만 봐도 흥겹다’를 펴냈다. 제목은 신 시인의 시 ‘파장’의 첫 구절에서 따왔다.
1부는 일제강점 말기 초등학생이던 ‘허풍선이 땅꼬마’ 신 시인의 유년시절을 담아냈다. 친구들에게 꿀리지 않기 위해 가족들의 이력을 화려하게 지어내거나 아버지 호주머니를 슬쩍 슬쩍하는 개구진 모습을 만날 수 있다. 2부에서는 김관식 시인의 도움으로 한때 포기했던 시를 다시 쓰면서 문우들과 어울렸던 1960, 70년대를 회상한다. 천상병 시인은 김관식 시인의 집에서 값나갈만한 책들을 훔쳐 헌책방에 팔아 술값을 충당하곤 했다. 1980년 긴급조치 시대, 계엄이 전국으로 확대되며 조태일 시인 등과 구치소에서 며칠을 보낸 적도 있었다. 구속한 검찰관조차 왜 구속한지 모르는 상태. 검찰관의 “문단에서 비례대표로 오셨군요”하는 농담에서 팍팍한 한 시절의 풍경이 묻어난다. 신 시인은 “잘난 게 없고, 잘하는 게 없는 게 문인들이라 ‘못난 놈들’이라고 썼다”면서도 “젊은 사람들이 예전의 우리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좀 더 알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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