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현대미술 거장들의 ‘속살’들여다보기

  • 입력 2009년 5월 16일 02시 54분


에드워드 호퍼의 ‘살티요 맨션’ 연작 중 한 작품(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빛을 ‘환한 힘’으로 여긴 호퍼는 이 작품을 성공작의 하나로 꼽았다. 사진 제공 아트북스
에드워드 호퍼의 ‘살티요 맨션’ 연작 중 한 작품(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소장). 빛을 ‘환한 힘’으로 여긴 호퍼는 이 작품을 성공작의 하나로 꼽았다. 사진 제공 아트북스
◇ 전설의 큐레이터, 예술가를 말하다/캐서린 쿠 지음/480쪽·아트북스·1만5000원

20세기 중반의 대표적인 추상화가 중 한 명으로 손꼽히는 마크 로스코는 한때 통념을 거부하고 자신만의 신념으로 독창적인 작품을 창조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그가 평판과 인기에 집착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천재성은 점점 시들어갔다. 결국 그는 매일 술을 마시고 비평가들과 친분을 유지하려고 전전긍긍하는 나날을 보내다 1970년 자살한다.

저자인 캐서린 쿠는 로스코의 몇 안 되는 친구 중 하나였다. 로스코는 술에 취한 채 저자에게 와서 창작의 고통과 불안을 토로할 정도로 쿠를 가깝게 여겼다. 쿠는 로스코가 사망한 뒤 딸 케이트가 아버지의 작품을 지키기 위해 소송을 벌였을 때 케이트를 끝까지 지지해주기도 했다.

쿠는 25만여 점의 미술품을 소장한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에서 1943년부터 16년간 큐레이터로 일했고, 잡지 ‘새터데이 리뷰’에서 20년간 미술비평가로 활동했다. 저자가 평생 예술가들의 집과 작업실을 드나들며 친분을 쌓은 현대미술의 거장 16명의 에피소드를 책 속에 담았다.

추상화가 프란츠 클라인은 자신의 작품에 제목을 붙이는 일에 무관심했다. 1955년 가을 저자는 ‘미국 예술가들 도시를 그리다’라는 주제의 전시회 준비를 위해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다. 클라인의 작품을 전시회에 꼭 포함시키고 싶었던 저자는 클라인과 함께 제목이 붙지 않은 작품을 골라 ‘뉴욕’과 ‘3번가’라는 제목을 붙인다. 전시회에 작품을 넣기 위한 ‘편의상의 작명’이었지만 이 제목은 지금까지도 학술 도록에 정식 명칭으로 남아있다.

에드워드 호퍼는 미국 공황기의 불안과 소외를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으로 유명하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호퍼에게는 “은밀하고 자신 안에 고립된 듯한, 거의 범접할 수 없을 것 같은 무언가”가 있었다. 저자는 호퍼를 1943년 여름 멕시코시티에서 만났다. 당시 호퍼는 시끌벅적한 관광지 분위기에 진절머리가 난 상태였다. 저자는 호퍼에게 도피처로 삼을 만한 곳을 알려준다. 바로 멕시코시티에서 1000km 정도 떨어진 살티요 마을이다. 집처럼 편안하고 평범한 마을 분위기에서 영감을 받은 호퍼는 네 점의 ‘살티요 맨션’ 연작을 그린다. 호퍼는 이 마을에 푹 빠져서 그 뒤로도 네 번 더 멕시코를 방문했다.

저자는 예술가들을 곁에서 지켜볼 수 있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을 ‘책무라기보다 특권’이라고 표현했다. 작품 확보를 위한 미술관들의 치열한 경쟁, 인상주의 작가 조르주 쇠라의 걸작 ‘그랑 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가 불탈 뻔 했던 에피소드, 현대미술이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시대상 등을 함께 읽을 수 있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